한국일보

트럼프와 김정은이 노벨평화상을 받는 날

2018-04-23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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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추천됐다’-. 조크가 아닐까.

인종차별적인 성향을 노골적으로 내보여왔다. 게다가 극히 호전적이다. 이슬람이스트 테러리스트에 대한 고문행위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는 등. 말과 행동에서 ‘국제적 평화애호자’란 이미지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그런 트럼프가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다니.

그런데 사실이다. 두 달여 전, 그러니까 지난 2월1일 노르웨이 언론은 2018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천됐다고 보도했다.


세계 최악의 인권탄압국이다. 나라 전체가 수용소군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모부도 처형했다. 형도 죽였다. 그도 모자라 화학무기에, 핵에, 미사일로 위협을 해댔다. 그 김정은도 어쩌면 올해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2000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이 만났던 것. 그 공로로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김정일은 받지 못했다.

그 김정일의 아들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다. 그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도 정상회담을 갖는다. 그 만남 자체가 역사적이다. 남북회담의 공동 공로자다. 김정일은 그런데 노벨평화상을 못 받았다. 그게 한이 되었던가. 그의 아들 김정은이 올해 노벨평화상을 받아야한다는 주장이 한국의 좌파세력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조크도 적당히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김정은도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도 있다니.

마이크 폼페이오 미 중앙정보국(CIA)국장이자, 국무장관 내정자가 비밀리에 김정은을 만났다. 닉슨 행정부 때 헨리 키신저가 비밀리에 중국의 마오쩌둥을 만난 사례와 흡사하다고 할까.

이 사실이 공표되면서 새삼 나오고 있는 관측이 트럼프와 김정은이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 후보로 유력시 된다는 거다. 무슨 말인가.

회의론이 지배했었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 그 자체에. ‘끝내 불발로 끝날 것이란 전망’이 일부에서 제기될 정도로. 그 미-북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가 높아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폼페이오를 밀사로 파견했다. 김정은은 받아들였다. 그만큼 양측 모두가 정상회담에 진지하게 임할 자세임을 알리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북한 핵문제에 관한 한 트럼프는 일종의 역사적 소명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위대한 인물에게는 역사적 순간이라는 것이 있다. 트럼프는 북 핵 위기를 바로 그렇게 보고 있다.” 악시오스(Axios)지의 보도다.

이 악시오스의 보도내용을 인용해 CNN 등 미 주류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대화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그(김정은)를 움직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도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 체제로 바꾸는 안을 제시하겠다.” 문재인 정부가 오는 27일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밝힌 내용이다. 트럼프는 선뜻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이 역시 어찌 보면 터무니없는 북핵문제에 대한 자신감 발로가 아닐까 하는 것이 상당수 관측통들의 반응이다.

“북한과의 관계에서 만사형통이랄 정도로 순조로웠던 시기를 맞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그 직후 찾아든 것은 항상 낭떠러지였다.“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의 말이다.

이른바 그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이라는 것을 바라보는 미 주류언론의 시각은 극히 차갑다. 말이 평화이지 북한이나 한국의 좌파에게 ‘평화협정’은 한반도에서의 미군철수, 더 나가 한미동맹종결을 의미한다는 것. 타임지도 같은 지적을 하고 있다. ‘평화’라는 이름에 현혹돼 트럼프는 핵 폐기 대가로 주한미군 철수를 제시할 우려도 크다는 거다.

데일리 비스트의 고든 챙의 분석은 더 신랄하다. 트럼프의 블레싱(blessing)과 관계없이 문재인 정부는 이미 일관되게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을 통한 연방제 통일을 추진해왔다. 한국의 정부여당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헌법 개정도 그 일환으로 386세대가 주축이 돼 그동안 평양 측이 주창해온 연방제 통일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밝힌 것이다.

일본의 시각도 비슷하다. 남북정상회담에 이은 미국과의 정상회담. 이 일련의 프로젝트는 남북한 합작, 다시 말해 김정은 체제와 좌파 문재인 정부의 공동프로젝트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우선 진단했다. 바로 그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트럼프와 김정은 회담에서는 합의가 나올 공산이 큰 것으로 일단 내다보고 있다. 문제는 그 이후라는 게 하나같은 지적이다.

북한 핵은 김일성 때부터 3대에 걸친 체제의 명운을 건 사업이다. 이처럼 수령유일주의의 북한은 핵이라는 DNA가 각인돼 있는 체제인 만큼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상황은 있을 수 없다. 결국 정상회담은 김정은의 시간벌기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그나저나 트럼프가, 더 더욱이 김정은이 노벨평화상을 받는 그런 날이 오기는 올까. 아직까지는 뭐라 속단할 수가 없다.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같은 독재자들도 한 때 후보로 이름을 올린 일이 있다. 그리고 베트남휴전의 공로로 키신저와 월맹의 레둑토가 수상자로 발표된 지 1년여 후 월맹의 침공으로 평화협정은 깨지고 월남이 공산화됐다. 이것이 노벨평화상이 빚은 역사의 한 코미디이기도 하니까.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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