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모범생

2018-04-23 (월) 다니엘 홍 교육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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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터질지 모르는 모범생

다니엘 홍 교육전문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에 등장하는 클로드 부주교는 어릴 적부터 “너는 성직자가 되어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의 부모는 클로드가 말할 때 항상 눈을 아래로 깔고 낮은 목소리를 내도록 키웠다.

클로드는 아이들과 놀 때도 큰소리를 지르지 않았고 항상 조용하고 착한 학생으로서 공부에 올인했다. 라틴어ㆍ그리스어ㆍ히브리어 같은 언어는 물론 신학ㆍ의학ㆍ약학 등 여러 분야를 섭렵하며 마치 인생의 목적이 지식 축적에 있는 것처럼 공부에만 집중했다. 한마디로 클로드는 부모와 학교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하는 모범생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성실하게 따르는 동안 클로드는 세상 경험을 하기 위해 일탈을 하거나 쓸데없는 공상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 결과, 스무 살 때 교황청의 특별 인정을 받아 신부가 되고, 노트르담 성당의 최연소 신부이자 학자로서 화려한 커리어를 시작하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모든 것에 능통한 마법사” 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클로드의 무의식 세계 속에 쌓인 스트레스가 표출되기 시작하면서 그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인물이 되었다. 항상 침울하고 근엄한 표정을 짓고 팔짱을 끼고 다니는 클로드를 본 어린이, 어른 모두는 그 앞에서 얼어붙었다.

또한 클로드는 항상 여자를 멀리했고 여자 옷자락이 살랑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귀를 막고 눈을 가렸다. 특히 자유분방한 보헤미안 여자와 집시를 싫어해서 그들이 성당 앞 광장에서 북치고 춤추는 것을 금지하도록 주교에게 청원하기도 했다.

어느 날, 자신의 독방에서 묵상을 하던 클로드는 창 밖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음악과 북소리에 짜증이 났다. 밖을 내다 본 클로드는 에스메랄다라는 여인이 춤을 추는 모습에 넋을 잃고 그녀를 흠모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성당의 종탑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때로는 길모퉁이에서 그녀를 기다리면서 엿보기도 했다. 스토킹을 한 것이다. 급기야 어느 날 클로드는 성폭행을 하려고 에스메랄드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페뷔스라는 군인 장교가 나타나 미수에 그쳤다.

이 사건 이후, 클로드는 에스메랄다가 사랑하는 사람이 페뷔스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질투ㆍ분노ㆍ열등감에 휩싸여 “너는 죽거나 아니면 내 것이 되어야 한다”라는 말을 되뇌며 몇 주 동안 성당의 모든 의식이나 회의에 불참했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에스메랄다에 비해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통제된 삶을 살아온 클로드는 자기 같은 모범생은 성직자가 됨으로써 악마로 변신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스메랄다가 누리는 자유를 맛보지 못한 데서 온 억울함,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사회적 지위를 지녔지만 사랑싸움에서 장교에게 밀린 패배감이 클로드의 무의식 세계에 묻혀있던 폭탄 뇌관을 건드렸다.

항의ㆍ비판ㆍ저항 없이 묵묵히 부모와 학교가 시키는 대로 따라가는 삶,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질문조차 못하고 지시와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 같은 삶, 그 끝에는 자기혐오가 기다리고 있다.

결정적으로 평소에 억눌린 욕구의 출구를 찾지 못하는 모범생은 자신이 지켜온 룰을 타인에게도 강요한다. 그것은 무의식적인 복수다. 또한 모범생이 파워를 쥐게 되면 클로드처럼 타인을 괴롭히거나 민폐를 끼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순응과 복종에 익숙한 수동적인 학생, 즉 모범생이 많을수록 사회의 구석구석은 뇌관 건드리는 소리로 가득 차게 된다.

<다니엘 홍 교육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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