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름다운 센트럴 팍, 슬픈 이야기

2018-04-21 (토) 김성실 (연합감리교회 여선교회 인종정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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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 중심의 맨하탄 센트럴 팍 서쪽 가장자리로 어마어마하게 땅값이 비싼 82가 부터 87가 지역이(트럼프 타워에서 30블럭 북쪽) 미 원주민들이 거주하는 세네카 마을이었다. 노예해방으로 자유를 찾은 흑인들이 이 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여 30여 년간을 어렵사리 자신들의 안식처로 만들어 갔고 그즈음 뉴욕 시에 거주하는 흑인 인구는 3배로 증가했다.

그 당시 땅을 소유한다는 것은 대단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자기의 땅을 갖게 되면 빈민가와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또한 그 당시에는 250달러 상당의 부동산을 소유한 남성에게 한하여 투표권이 주어졌다.

흑인들은 법적으로는 해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상황은 지속되었다. 백인들이 흑인에게는 땅 매매를 하지 않아서 거주지를 만들어 가는데 어려움이 컸다. 흑인들의 땅 구매문제는 늘 신문지상을 통해 공공연히 조롱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다행히 맨하탄 북쪽지역을 소유했던 한 백인부부가 감리교 성공회 교파인 제일 AME 시온 교회( The First African Methodist Episcopal Zion Church) 교인들에게 땅을 매매하여, 그곳에 흑인 교회가 건축되고 후에 아프리칸 소사이어티라는 공동체가 설립되었다. 교회 주변에 서서히 주택들이 들어섰고 흑인 학교와 3개의 흑인 교회가 지어졌다.

1863년 1월1일의 링컨대통령 노예해방선언 10년 전인 1853년, 노예 신분으로 도망 나와 목사 안수를 받고 AME 교파 두번째 감독이 되었던 크리스토퍼 러쉬(Christopher Rush) 목사는 교회 건축을 위해 주춧돌을 놓으며 그 안에 성경책, 뉴욕시를 대표하는 신문(The Tribune과 The Sun 등)을 타임캡슐 상자에 넣어 후세에게 역사를 남기도록 계획 했다. 그는 건축을 통해 교인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설교를 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교회 건축 불과 두 주 전에 바로 그 교회 건축 지역이 센트럴 팍을 만들기 위한 도시계획안에 들어있어 정부에 이미 매입되도록 결정이 되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고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꿈을 갖기 시작한 흑인들의 유일한 안식처인 그들의 집을 백인들은 무자비하게 철거하였다.

인구밀도가 높고 차량의 홍수로 숨이 막힐 듯한 뉴요커들이 잠시나마 맑은 공기를 들이키며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센트럴 팍의 아름다운 공간 밑바닥에는 수많은 흑인들의 피와 땀, 눈물로 얼룩진 삶이 깔려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뉴욕의 센트럴 팍에는 백인들의 탐욕이 삼켜버린 그들의 꿈이 있었다. 슬픈 역사의 한 자락이다. 미국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가정의 보금자리인 집이 무자비하게 헐리는 상황을 상상해보면서, 흑인들이 겪어낸 그 비싼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성실 (연합감리교회 여선교회 인종정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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