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평양에 자유민주주의 선물했으면

2018-04-19 (목) 이정근 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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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 자유민주주의 선물했으면

이정근 성결교회 목사

“4월은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영국 시인 엘리엇이 쓴 ‘황무지’(The Wasteland. 1922년 작)의 일절이다. 이 시는 4.19 혁명이 끝나면서 한국 전역에 널리널리 회자되었다. 특히 서울대 본부 캠퍼스에는 그 때 활짝 피어 연보라색으로 성장한 라일락 몇 그루가 있었다. 1960년 독재정권에 항거하여 일어난 학생주도 혁명 때였다. 천하보다 귀중한 젊은 생명들이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라일락 꽃잎처럼 잔인하게 떨어졌다. 그 때 목이 터져라 불렀던 군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꽃잎처럼 떨어져 간’ 185명의 뜨거운 피가 한반도 남녘 땅을 흥건히 적셨다.

4.19혁명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한 단계 끌어올린 큰 사건이었다. 학생들이 시작했고 온 국민이 뜨겁게 성원했다. 그래서 현재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도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 명시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다’라는 격언처럼 한국의 민주적 발전도 6.25 사변 때 흘린 피, 4.19 혁명 때 흘린 피를 밑거름으로 했다.


4.19 혁명의 원인에는 몇 가지가 있다. 직접적 원인은 부정선거였다. 투표도 부정, 개표도 부정, 집계도 부정, 발표도 부정이었다. 따라서 4.19 혁명 당시 가장 목청 높여 외친 구호는, “부정선거 다시 하라”였다. 이것은 정의를 세우기 위한 투쟁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독재체제였다. 이승만 장기집권체제에 대한 저항이다. ‘이승만 하야하라’는 외침, 그리고 남산에 있던 그의 동상을 쓰러뜨린 것으로 상징된다.

아울러 소수의 부익부 다수의 빈익빈 곧 경제정책 실패를 들기도 한다. 그런 것들이 직접적 원인인 것은 맞는다. 하지만 더 깊은 원인을 캐어보면 4.19 혁명은 자유를 향한 투쟁이었다.

길지도 않은 <서울대학교 4.19 선언문>은 다음과 같은 구절들로 가득 차 있다. ‘무엇보다도 의사표시의 자유, 쉽게 말한다면 데모할 자유, 자유롭게 학문할 수 있는 자유의 확보, 자유의 대학정신, 민주주의 정치사는 자유를 위한 투쟁사, 근대적 민주주의 근간은 자유, 상실되어가고 송두리째 박탈되고 있는 자유, 자유의 전선 확대,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및 사상의 자유, 우리는 기쁨에 넘쳐 자유의 횃불을 올린다, 자유에의 열렬한 대열.....

그리고는 이렇게 끝맺는다. “보라, 우리는 캄캄한 밤의 침묵에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의 일익임을 자랑한다. 일제의 철퇴 하에 미칠 듯 자유를 환호한 나의 아버지 형제들과 같이 양심은 부끄럽지 않다.”

학생혁명의 결론을 맺은 각 대학교수단 시국선언문에도 ‘민주와 자유를 기본으로 한 대한민국....학원의 자유’를 명시했다.

인류의 역사는 자유를 향한 투쟁사이다. 그런데 최근 모국의 헌법개정과정에서 그 전문에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자유’를 삭제하자는 주장들이 있었다. 그건 안 된다. 무슨 논리를 대더라도 절대로 안 된다.

남한에 비교하여 북한에는 자유의 폭이 매우 좁다. 모든 자유의 척도인 종교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보라. 지금도 얼마나 많은 가혹한 박해가 기독교 신자와 정권 반대파들에게 가해지고 있는가. 김일성 시대에는 북한 헌법에 ‘종교를 반대할 자유’라는 것도 있었다. 그 조항 때문에 ‘종교의 자유’는 시체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종교반대의 자유’라는 독소조항 때문에 잔혹하게 고문당하고 목숨을 잃었다. 탈북인사들의 증언이 얼마나 많은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곧 정상회담을 갖는다. 국가 정상들이 만나면 조그만 것이라도 서로 선물을 교환하는 것이 관례란다. 무엇들을 주고받을까.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주었으면 하는 선물이 무엇이어야 할지 얼핏 떠오르는 것이 없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다른 것 말고 꼭 <자유민주주의>를 선물했으면 좋겠다.

<이정근 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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