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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적폐, 구적폐

2018-04-17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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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적폐 청산을 공약으로 처음 내건 사람은 박정희다. 그는 5.16 쿠데타를 일으킨 후 혁명 공약의 하나로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 도의와 민족정기를 바로 잡기 위해 청신한 기풍을 진작시킨다”를 내걸었다.

그는 이 공약에 따라 부패한 정치인과 경제인, 깡패들을 잡아들였고 이는 국민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나중에 박정희의 최대 정적이 된 장준하도 초기에는 5.16을 지지했다. 2년 뒤 외신이 “놀라울 정도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라 부른 대선에서 그가 승리한 것도 이런 여론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집권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를 반대하는 야당과 재야인사는 물론 당내에서 그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탄압은 심해졌고 구악을 일소하겠다는 초심은 사라졌으며 자신이 구악을 능가하는 신악으로 변했건만 자신만 그걸 모르고 있다 김재규 총에 맞아 허무하게 갔다.


박근혜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2004년 노무현 탄핵 역풍으로 한나라당이 존폐의 기로에 섰을 때 당 대표가 된 박근혜는 천막 당사를 짓고 국민의 용서를 빌었다. 국민들은 한 번 더 기회를 줬고 50석도 건지지 못할 것이라던 그 해 총선에서 121석을 얻는 기적을 이뤘다. 그 때부터 박근혜에게는 ‘선거의 여왕’이란 별명이 붙었다. ‘콘크리트 지지율’이란 말이 나온 것도 그 때쯤이다. 박근혜의 몰락은 그 때부터 시작된 것인지 모른다.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면 문재인 정부도 비슷한 길을 가려는 것 같다. 야당은 물론이고 집권 여당 내부에서도 자격 미달이란 비판을 받는 탁현민을 감싸고 돌 때부터 그 조짐은 보였다. 성매매를 찬양하고 여성 비하를 부르짖어온 그는 ‘미투’ 운동이 거세게 일고 있는 지금 적폐 청산을 외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행정관으로는 지극히 부적절한 인물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그를 해임하기는커녕 평양 공연 총 책임자라는 중책을 맡겼다. 문재인의 높은 지지율을 믿고 벌이는 오만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번에 김기식 사태가 터졌다. 김기식 금감원장은 참여연대 시절부터 공직자의 청렴성을 강조해 왔고 국회의원이 되서는 대가성과 관계없이 공직자가 선물 받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 ‘김영란 법’ 제정에 앞장선 인물이다.

그런 그가 피감 기관 돈으로 여비서와 단 둘이 여러 번 외유를 다녀왔을 뿐 아니라 자기가 운영하는 연구소에 돈을 기부하고 이를 월급으로 타 쓰는 어이없는 짓을 저질렀다. 그런데도 더불어 민주당 우원식 원내 대표는 그를 “깐깐한 원칙주의자”며 그에 대한 비판은 개혁을 막으려는 기득권 세력의 음모로 몰아붙였다. 청와대도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을지 몰라도 그 정도는 관행이었다며 감쌌다.

그럼에도 그는 결국 물러났다. 선관위가 그가 ‘더미래 연구소’에 자신의 정치 후원금 5,000만원을 기부한 것이 공직 선거법 113조에 위반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이런 인물을 요직에 앉히고 감싼 것은 그와 친분이 있는 인물들이 사방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를 검증한 민정 수석 조국과 그와 보조를 맞춰갈 김상조 공정 거래 위원장, 장하성 청와대 정책 실장이 모두 참여 연대 출신이다.

그 와중에 이번에는 드루킹이라는 정체불명의 인사가 작년 대선 때 댓글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그는 그때 문재인 후보를 도왔다는 공을 내세워 현 정부 실세인 김경수 더불어 민주당 의원과 만나 자기가 추천한 인물을 오사카 총영사로 임명할 것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자 앙심을 품고 이번에는 문재인 비방 댓글을 조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의원은 드루킹 추천 인물을 청와대에까지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무슨 공을 얼마나 세웠길래 그가 다리를 놨는지 궁금하다. 국정원의 댓글 공작을 국기 문란 행위라고 맹공했던 더불어 민주당이 댓글 조작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은 치명상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신이 인간을 벌 줄 때는 반드시 먼저 그를 오만하게 만든다. 높은 지지율은 신기루처럼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당사에 “우리도 그래서 망했다”는 배경막을 걸었다 한다. 오랜만에 옳은 소리 한번 했다. 지금이라도 문재인 정부는 겸허하게 비판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길 빈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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