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년과 시골

2018-04-13 (금) 이정언 / 은퇴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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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60이 지나 시골에 집을 지어 이사할 생각을 할 때는 몹시 두려움이 앞섰지만 막상 이사 한 후에는 정말 ‘잘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도시에서 살 때보다 너무 조용해서 좋고, 자연과 벗할 수 있어 더욱 좋다. 게다가 형제 같은 이웃들이 있으니 금상첨화다.

아무런 외부의 방해도 받지 않는 고즈넉한 삶이 마치 산속 절간에 와 있는 것 같다. 5에이커 숲 속 3분의 1 면적에 자그마한 집을 짓고 온갖 과일나무와 꽃나무를 심으니 마치 에덴동산에 와 있는 느낌이기도 하다. 집을 지어 이사한 지가 벌써 열두 해가 지났다. 철따라 온갖 과일과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4월 들어 개나리꽃과 진달래, 벚꽃이 한창이고 자두 꽃도 하얗게 피어있어 봄을 한껏 노래한다. 수선화도 한 두 송이 피기 시작하고 튤립의 봉오리도 올라온다. 마치 소녀의 가슴이 살포시 올라오듯 자목련 꽃봉오리도 커진다. 계절은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우리를 맞아준다.


정원 가꾸기와 텃밭 일이 이젠 조금씩 힘들어지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특히 가을에 과일나무 가지 쳐주기가 힘들고 넓은 잔디 깎는 게 점차 힘겨워진다. 그래도 감사한 마음으로 보람을 느끼며 살고 있다.

나와 같이 늙어가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내 자신도 나이 들어감을 새삼 깨닫는다. 처음에는 좋아서 만나 결혼했고, 중년에는 자식 키우고 일하며 바쁘게 살았고, 장년에 들어서는 성격차이로 갈등과 미움도 있었고 다툼도 많았다.

노년에 들어서야 비로소 서로를 이해하는 아량이 생기고 철이 들기 시작하여 서로 아껴주면서 살아가고 있다. 연민과 사랑이 다시 움트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다.

나는 68세 때에 주님께 “더도 말고 75세 까지만 살게” 해주십사 하고 기도했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들 하지만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간청하는 게 욕심 같아서 7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했던 것 같다. 지금이 바로 75세다. 감사와 함께 항상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고 있다.

“인생은 한바탕 꿈이요 아침에 돋아나는 풀잎이옵니다. 아침에 싱싱하게 피었다가 저녁이면 시들어 마르는 풀잎이옵니다”(시편 90:5)라는 성경말씀을 항상 되새긴다.

<이정언 / 은퇴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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