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꿈과 현실, 실용과 원칙

2018-04-12 (목) 이지연 변호사
작게 크게
꿈과 현실, 실용과 원칙

이지연 변호사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야망이 대단히 큰 한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중에 정치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대화의 흐름은 순조로웠지만 서로가 추구하며 지지하는 정치적인 이념은 판이하게 달랐다.

솔직히 나는 사회를 바라보는 신념 때문에 누군가와 이별까지 생각했던 적이 있었고, 그런 나를 두고 몇몇 지인들은 사상과 이상이 밥을 먹여 주냐며 내게 쓸 때 없이 까다롭다는 비난을 했었다. 그러나 과연 내가 선호하는 특정한 정치적 성향들이 단지 정치만의 문제일까?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며 추구하는 삶의 본질적인 가치의 문제가 아닐까 라고 반문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현재의 미국 대통령이 삶의 롤 모델이라고 말하던 그 야심가는 꿈뿐만이 아닌 모든 제스처와 살아가는 방식 역시 거창하고 화려한 듯 했다, 마치 트럼프의 기질이 스며든 것처럼. 그는 원하는 모든 일을 추진하고, 성대한 부와 그를 둘러쌓을 높은 울타리를 구축하기 원하는 트럼프의 방식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했다. 그는 세계 최고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그런 그의 웅대한 꿈과 포부가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과연 이 세상에서 몇 명이나 그렇게 용기 있는 꿈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까?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나의 꿈은 상대적으로 소박했다. 나는 그저 인생은 일정한 선의 품격을 인정받으며 유지하는 수준에서 행복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왔다. 굳이 귀감이 되는 인물을 꼽자면 원칙을 중요시하며 이상적인 관념을 가지고 희망과 영감을 주기 위해 연설을 뿜어내던 오바마 쪽에 가까웠다.

내가 그 동안 지켜봐왔던 트럼프는 매사가 충동적이고 자극적이었다. 다소 충격적인 공약들을 대부분의 정치가들처럼 듣기 좋게 돌려 말하지 않았다. 한마디 한마디가 거침없고 때로는 공격적이기에 그를 반대하는 이들은 많이 불편했고, 그를 지지하는 이들은 속이 시원했으리라.

하지만 최근 그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실용을 우선으로 타협이나 온화함을 내세우지 않다보니 존경심과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대놓고 욕을 먹어도 그에게 가식 따윈 없는 것 같다. 두려움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 좋든 싫든 세계가 주목할 수밖에 없고 많은 이들이 그로 인한 한미, 대북 관계의 파란을 예상한다. 어떻게 보면 최근 몇 십년간 북한과 대화를 시도했던 여러 미국 대통령들 중 가장 충동적이며 독재적인 성향이 있기에, 그동안 시도해보지 않았던 전략과 변화도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 모른다.

반면 오바마 전 대통령은 부드러웠다. 2008년에 혜성처럼 나타난 그는 공평과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의 감성에 호소했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았고 마음을 열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지나치게 이상적인 달변가였을 뿐이라는 비평이 따른다.

물론 그 둘 중 누가 더 훌륭한가는 보는 이의 시각과 가치관에 따라 다르다. 국가의 위대함을 원하는 이들의 입장에서 살기 좋은 나라와, 국민의 위대함을 원하는 이들이 느끼기에 살기 좋은 나라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들에게는 양가적인 감정이 있다. 물질과 성공을 간절히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자유와 이해, 그리고 사랑과 존경을 받고픈 소망이 있다. 고가의 선물에도 감동을 받지만 매일 전화하여 다정하게 안부를 물어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배려에서 역시 감동을 받으며 신뢰를 쌓아간다.

그러니 결국 한 가지 잣대로만 상대를 평가하거나 재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꿈과 현실, 실용과 원칙이라는 유연한 기준을 갖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고 현명한 일이다. 그와 나는 갈대처럼 흔들리는 여론과 편향적으로 정치인들을 묘사하는 이 시대의 언론을 토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들만으로 무엇이 옳은가를 판가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그날의 대화를 끝냈다.

<이지연 변호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