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투, 세상을 바꾸는 운동

2018-04-10 (화) 12:00:00 최상석 성공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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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세상을 바꾸는 운동

최상석 성공회 주임신부

미투(Me Too)운동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동안 남성 중심의 사회 혹은 문화적 관습에 만연해 있던 성범죄의 심각성이 SNS를 통하여 드러나고 있다. 각계각층에서 일어나는 ‘나도 피해자’ 운동은 미국은 물론 고국에서도 피해자의 아픔에 대한 공감과 지지와 가해자에 대한 분노로 사회적 충격이 대단하다.

일부에서는 미투운동을 마뜩치 않게 보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용기를 내어 미투운동에 참여한 피해자를 조롱하거나 2차 피해를 주기도 하고, 미투운동 의도의 순수성을 폄훼하거나 정치적 음모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벌써 미투운동의 사회적 피로감을 이야기하는 주장도 나온다. 어렵게 시작한 미투운동이 고귀한 열매를 맺기 위하여 미투운동의 본질에 대한 깊은 사회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미투운동은 간단히 말해 권력형 성범죄로 가해자가 어떤 조직 안에서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저지르는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 등을 의미한다. 미투 범죄는 권력관계 안에서 일어나기에 피해자는 싫어도 자신의 거부 의사를 말하기 어렵다. 가해자를 고발할 경우 권력의 차이와 성범죄 증거 제시의 어려움으로 인해 피해자가 오히려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나아가 직장 내의 따돌림이나 해고 위협, 가정 파탄의 위험, 불륜의 대상자로 혹은 무고자로 지목되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수모를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투운동의 본질이 이처럼 개인적이며 동시에 사회 구조적이기에 그 해결책 역시 개인적이며 사회적이어야 한다. 범죄로 인하여 피해자는 개인적으로 엄청난 심리적, 육체적, 사회적 고통을 겪는다. 개인적 차원의 철저한 심리적 치유가 요청된다.

이와 함께 미투운동의 고발들이 사회적 차원의 범죄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드러난 범죄들이 순수하고 동등한 남녀관계가 아니라 우월적 지위에 근거한 갑을이라는 구조적 권력 관계가 작용하고, 남성중심의 문화적 관습이나 왜곡된 남성의 성(gender)의식에서 오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 있다. 실존주의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역사의 기원과 목표』에서 말한 ‘차축시대’(車軸, axial age)의 위대한 인물들, 천재적 과학자나 사상가, 위대한 정치인 종교인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아울러 정말 크게 세상을 바꾼 사람들은 혁명이나 시민운동에 동참한 평범한 사람들이다.

존 엘킹턴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그는 그의 책 『세상을 바꾼 비이성적인 사람들의 힘』에서, 세상의 손익이나 자기만의 이익을 넘어선 비이성적인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말한다. 새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참신한 통찰이다.

아울러 반드시 넣어야 할 사람들이 있다. ‘아픈 사람들, 고통 받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점이다. 이는 역사의 진리다. 고국의 3.1 독립만세운동과 독립운동, 독재에 항거한 4.19혁명, 촛불시민운동이나 미국의 독립운동, 노예해방운동, 인권운동 등등 박해 받는 사람들, 고통 받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었다.

미투운동 피해자들이야말로 고통 받는 사람들, 아픈 사람들이다. 여성을 대상화하고 타자화(他者化)하는 남성 중심적 문화의 피해자들이다. 미투운동은 꾸준히 일어나고 열매 맺어야 한다. 가해자는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하고, 피해자는 수치심 없이 당당히 치유 받고 위로 받고 격려 받아야 한다. 남성과 여성이 평등한 성(gender) 의식을 지녀야 한다. 서로의 성적 의사표시를 명확히 하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 미투운동은 개인적 피해 고발을 넘어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한 사회변혁 운동으로 열매 맺어야 한다.

<최상석 성공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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