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죄책감, 넌 누구니?”

2018-04-05 (목) 모니카 이 심리상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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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 넌 누구니?”

모니카 이 심리상담가

심리상담사는 남의 이야기를 듣는 직업이지만, 우물가 아낙네들의 수다나 지인의 넋두리를 듣는 것과는 분명 차별성을 둔다. 훈련된 상담사는 내담자의 이야기를 영화나 소설 같이 마냥 빠져 듣는 게 아니라, 이야기 저변에 깔린 감정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내담자가 스스로 인식하고 바라보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감정은 “왜 그렇게 느끼느냐, 이렇게 느껴라”라고 머리나 이성으로 명령할 수 없는 이미 내면에 배달된 메시지다. 그것을 계속 외면하거나 억압하면 엉뚱한 곳에서 화나 분노가 폭발되기에, 감정을 세분화하여 스스로 인식하는 것은 건강한 정신과 마음 돌봄을 위한 필수요소다. 그래서 감정에 대해 배우고 자신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상담 중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내담자가 드러내는 두 가지 큰 감정은 죄책감과 수치심이다. 동물에게는 없고 문화를 지닌 인간만이 느끼는 두 감정은 비슷하지만 본질적인 작동방식이 다르다. 수치심은 외부의 시선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반면, 죄책감은 양심에 어긋난 행동을 했을 때 스스로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감정이다.


인간은 공동체의 질서유지를 위해 여러 규칙과 법률 등을 만들어 개인의 욕망을 통제해 왔다. 이런 사회적인 규약들은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에 내재되어 스스로를 제약하는 굴레로 작용하였고, 이를 보통 ‘양심’이라 부른다. 죄책감은 바로 이 양심이 규칙을 어긴 자신을 비난하는 내면의 소리다.

죄책감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 실제로 사회의 규칙을 깨뜨렸거나 남에게 해를 끼치는 잘못한 행동에 대한 진짜 죄책감이 있다. 이러한 죄책감은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 피하고 타인에게 상처 주는 행동을 고치려고 노력하게 한다. 필요하다면 피해를 입힌 대상에게 사과하고 관계가 회복되는 생산적인 면도 있기에 모든 죄책감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한편 실제로 잘못한 행동이 없는데도 무거운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내담자들이 있다. 가짜 죄책감은 학습된 반응으로 외부의 기대를 채우지 못했거나 스스로 만든 높은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 생기는 자기 비난의 소리며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다.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의 임종을 곁에서 지켜주지 못하거나 충분히 돌보지 못한 미안함, 또는 사고나 전쟁에서 동료는 죽고 자신은 살아난 데 대한 생존자의 죄책감 등 자신이 통제할 수 없었던 상황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다면 불필요한 죄책감을 어떻게 제거할까? 먼저 모든 죄책감이 나쁜 것만은 아님을 인식하고 스스로 만든 가짜 죄책감은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혹시 실수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발생한 죄책감이라면 사과나 용서를 구하거나 처벌을 받음으로써 죄책감을 줄일 수 있다.

엄한 부모 밑에서 성장해서 높은 도덕적 양심기준을 가졌거나, 종교적인 율법에 강한 지배를 받는 사람, 또는 완벽주의자인 경우 더 큰 죄책감에 시달린다. 본인이 그런 성향이 강하다면 자신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스스로를 용서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죄책감이 생산적인 변화나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비이성적인 죄책감이 계속될 경우 자존감이 저하되고 무기력함과 통제력을 상실한 느낌으로 우울감이 깊어질 수 있다. 죄책감이 심한 경우 스스로 만든 왜곡된 생각과 실현 불가능한 기대를 인지치료나 상담을 통해 수정, 교정하는 작업이 죄책감 극복에 큰 도움이 된다. 죄책감은 마음속에 있는 하나의 생각과 감정일뿐 그것이 꼭 사실은 아님을 기억토록 하자.

<모니카 이 심리상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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