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이정훈 기자의 앵콜클래식] ‘메시아’

2018-03-30 (금) 이정훈 기자
크게 작게
[이정훈 기자의 앵콜클래식] ‘메시아’
헨델의 ‘메시아’는 단 24일만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곡이란 오래 걸린다고 해서 꼭 좋은 곡이 나오란 법은 없지만 ‘메시아’의 24일은 너무나 기적처럼 짧은 기간이었다. 이 곡이 유명하게 된 것은 아마도 이러한 초현실적인 스피드… 또 그러한 가십거리가 한 몫 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하나의 오라토리오가 그처럼 짧은 기간에 완성되기 위해서는 식음을 전폐하고 악보에 매달려야했을텐데 당시 중풍끼까지 있었던 헨델의 나이(56세)를 감안할 때 (인간적으로) 거의 불가사의한 창작의 열정이기도 했다. 영감이란 번개처럼 다가왔다가 번개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이기에 ‘메시아’같은 대곡이 나오기 위해서는 헨델같은 (속필)작곡가가 적격이었겠지만 그렇다하더라도 곡의 규모나 질적인 면을 따져볼 때 24일이란 기간은 사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어떤) 영적인 기적을 느끼게 하는 바 큰 사건이기도 하였다.

‘메시아’가 시사하는 바는 위대한 것이란 늘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시냇물 같다는 것이다. 진리란 어렵지 않고 오히려 쉽고 간결할 때 그 위력이 더 파괴적이기도 한 법이리라. ‘메시아’는 예수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었지만 신학적인 의미의 메시아가 아니라 한 인간의 마음 속에 찾아 온 빛으로서의 메시아였기 때문에 음악으로서 다가오는 감동도 색달랐다. 이 작품은 다른 수난곡처럼 복음서를 내용(가사)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성서의 이곳저곳에서 발췌하여 메시아의 기록들을 연결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종교곡이면서도 정통 종교곡(오라토리오)에 속하는 곡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작품이었다. 당시 헨델은 빚에 쪼들리면서 영적인 고갈 속에서 절망하고 있었는데 평상시 같으면 거들 떠 보지도 않았을 어느 2류 시인(대본가)의 오라토리오 대본을 보고 큰 감명을 느낀 나머지 정신없이 음악을 써 나갔다고 한다.

예수는 약 2천년 전에 이 땅에 와서 뭇 중생들의 고통과 절망 그리고 죽음의 사유 등을 갈파했는데 그 스스로 이러한 모든 원인과 증상들을 치유할 수 있는 의사이며 메시아(구세주)임을 자처했다. 그의 구원관은 인간이란 종교를 만남으로해서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를 만남으로해서 비로소 고통에서 해방되고, 번뇌에서도 헤어날 수 있다는, 메시아적 구원관을 펼쳐 지지를 얻었다. 예수는 스스로 빛과 생명이자 대속자이며 부활이라고 주장했는데 그의 기적과 독특한 설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사람은 누구나 메시아를 만나야하며 또 그를 통해서 치유받고 거듭나야 진정한 삶, 즉 중생된 삶으로 완성된다는 것이 복음의 중심이었고 바울같은 열광적인 추종자들의 전도에 힘입어 본래의 뿌리 유태종파를 넘어서 청출어람하는 세계적인 교세를 이루고 인류의 상징적인 메시아로 우뚝섰다.

1741년, 런던의 어느 어두운 거리에서 다리를 저는 한 초라한 늙은이가 가득한 슬픔을 안고 숙소로 돌아오고 있었다. 지난 30여년간 유럽 전역에서 찌를 듯한 명성을 누려온 작곡가 조오지 프레드릭 헨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끼니를 걱정해야하는 궁색한 처지에 전락해 있었고 더구나 얼마전 뇌출혈로 몸 반쪽이 마비된 상태였다. 책상 위에는 한 소포 덩어리가 놓여있었는데 내용물은 한 묶음의 오라토리오 청탁물이었다. '찰스 제넨스’라는 어느 무명 시인의 서명을 본 헨델은 모멸감을 느꼈지만 무심코 몇 줄 읽다가 번개에 맞은 듯 큰 감동에 휩싸이게 된다.

헨델은 다음날 아침이 된 것도 잊고 놀라운 속도로 오선지를 메워나갔는데 이 때 헨델을 본 하인은 헨델의 눈이 오로지 바라보고 있을 뿐 마치 넋 나간 듯 허공을 헤매고 있는 것을 느꼈다. 헨델은 이로부터 거의 먹지도 쉬지도 않고 일에만 달라 붙어 24일 뒤 마침내 기진맥진하여 침대 위에 나가 떨어졌는데 책상 위에는 ‘메시아’의 악보가 흩어져 있었다. 하인은 혼수상태의 헨델이 깨어나지 못할 것 같아 의사를 불렀지만 그는 기절한 것이 아니라 감동과 탈진으로 분리되었던 영혼이 잠시 잠에 취해 소생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1742년 4월 13일, 더블린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결국) 대 성공을 거두었고 특히 예수의 부활을 찬미하는 ‘할렐루야’ 장면에 이르러서는 왕과 더불어 모든 청중들이 자리에 일어섰으며 오늘날까지 뭇 영혼들을 벌떡 일으키는 감동의 명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절망으로 감겨있던 헨델의 눈에 메시아는 정말 살아있었다.

<이정훈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