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가 기승을 떨고 있다. 벨벳 혁명의 진원지다. 그 체코에서 스트롱맨 통치가 시작됐다. 폴란드도 헌정질서가 무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헝가리에서, 루마니아에서, 또 슬로바키아에서도 민주주의는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한 때 ‘아랍의 봄’으로 들떴던 중동지역은 물론 광대한 유라시아대륙에서 목도되고 있는 것은 독재체제로의 회귀현상이다. 그 압권(?)은 현대판 차르와 황제를 추대한 러시아와 중국이다.
왜 독재체제가 또 다시 맹위를 떨치고 있나. 아마도 인간성(human nature)에서 그 답은 찾아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일부의 해석이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유를 갈구한다. 이는 그러나 어디까지나 서구적 아이디어로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자유보다도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다.
자유를 최우선의 가치로 추구하는 서방전통에 훈련이 안 된 국민들은 자유를 무정부상태와 동일시하는 경향이다. 뭐랄까. ‘등 뜨시고, 배부르면 됐지…’하는 멘탈리티의 집단화가 권위주의, 혹은 독재체제로의 회귀를 불러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역사적 퇴행의 물결이 흉흉하다. 그 가운데 도쿄 발로 전해진 뉴스가 새삼 눈길을 끈다.
5000여명이 몰려들었다. 일시는 23일 오후 8시. 장소는 일본 도쿄 지요다구 총리관저 앞. 주최 측의 요청에 따라 발광다이오드(LED) 촛불과 플래시를 점등한 휴대전화 등을 치켜들자 관저 앞은 순식간에 촛불바다가 됐다.
한국에서 역사를 바꿨다. 그 촛불시위가 일본에 처음 상륙하는 순간이다. 시민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스고이(멋지다)”, “키레이(예쁘다)”등 감탄사를 연발했다는 보도다.
그 보도의 행간에서 느껴지는 것은 ‘다른 건 몰라도 민주주의에 관한 한 일본보다 한국이 한 수 위’라는 은근한 자부심이다. ‘하기는…’ 하는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다.
‘미투’(me-too)운동이 봇물처럼 번져가는 것도 그렇다. 촛불시위 뒤에 불거진 현상으로 아시아에서 한국만이 유일하다시피 하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다. 일본에서도 한두 번 ‘미투’의 외침이 있었지만 이내 조용해졌다.
무엇을 말하나. “동북아시아, 아시아는 물론 제3세계까지 통틀어서 자유시민에 의한 민주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한 한국 내 논객의 주장이다. 그 주장이 옳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 같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여건 중의 하나는 자유시민으로서의 저항정신이다. 그리고 사회전반에서의 투명성 확보다. ‘미투’운동은 그 일환으로 보여 하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역사의 대(大)반동기에 자유, 인권, 투명성을 지향하고 있는 역사의 본류를 지키고 있는 성채 같은 장한 존재로 비쳐진다.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한국의 자유시민이 이룩해낸 그 민주주의 가치관을 지켜내기에는 개헌논의조자 제대로 못하는 정치권이 너무 후진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