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할리웃보울, 삶 속의 음악

2018-03-24 (토) 최청원 내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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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해선 그림, 문학, 음악을 일상 속에 집어넣고 또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라”고 섹스피어는 우리에게 충고했다.

우리는 도심의 소음과 공해 그리고 복잡함 속에서 매일을 바쁘게 살고 있다. 대 문호의 충고를 듣고 싶지만 외딴 자연을 찾아가 살 용기도, 시간도 많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삶의 중턱을 훌쩍 넘어 서면서 나도 지금은 꼭 필요한 것만 가져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미련 없이 큰 집을 떠나 조그만 콘도로 이사했다. 생활의 간소화를 우선으로 장소를 물색했다. 선택의 최우선 순위는 오피스 출퇴근이 용이하고 음악을 쉽게 생활 속에 접할 수 있는 곳, 자연히 할리웃보울 근처의 콘도를 찾았다. 신앙 깊은 사람은 교회근처로 이사한다는데…


그렇게 택해 이사한 콘도는 LA의 개인 주거지 중 할리웃보울이 가장 가까운 집 중 하나다. 저녁을 먹은 후 소화도 시킬 겸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한 블럭만 걸어가면 할리웃보울이다. 그 덕에 지난 2년 동안 한 해에 25번 이상씩 음악회를 다녀왔다. 옛집에 살았다면 일생 동안에 갔었을 횟수다.

수목으로 아늑하게 둘러싸인 공간 속, 하루가 저물면 도시의 모습들은 어둠 속에 감싸 사라진다. 머릿속에서도 도시의 존재는 잊혀지고 하늘의 달빛과 별들이 보인다. 싱그러운 공기와 바람이 와 닿으면서 내 자신도 자연 속에 있다고 느끼게 된다. 무대에서 들려오는 음악은 자연과 어우러질 때 실내에서 듣던 때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가슴 속에 와 닿는다.

시성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음악회를 다녀와서 쓴 감상문에 동의하는 시간이 된다 : “음악은 조상(조각품)들의 호흡이며 아마도 형상(미술품)들의 침묵인 그대, 언어가 끝나는 곳의 언어여 (시나 문학의 한계성을 넘어선다는), 사멸해 가는 심장의 길 위에 우뚝 서있는 시간이여” - 그의 느낌은 모든 예술들은 음악의 상태를 동경한다는 말과 일치한다.

우리가 접하는 음악엔 서사시적인 공간을 가지면서도 은은하고 장중한 오케스트라 음악(클래식 음악)과, 서정시의 기본 정서를 가지면서 경쾌하고 가볍게 자극을 주며 율동에 몸이 쫓아가게 하는 팝 뮤직이 있다. 두 가지 다 음악의 장르로 즐거이 받아들인다.

금년 나의 첫 할리웃보울 나들이는 예년과 같이 4월말에 열리는 할리웃보울 한국일보 음악 대축제가 될 것이다. 15년 전 처음 공연부터 작년까지 매년 꼭 빼놓지 않고 참석했었다.

그곳의 둘러싸인 수목속의 분위기가 좋다. 더욱 좋은 것은 한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 나아가선 처음 본 얼굴도 친근하게 느껴지는 수많은 한인들, 즉 “우리들”이 함께 같은 장소에 모여 호흡하는 것이다.

삶에서 꼭 붙들고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가장 소중한 것이 “우리”라는 개념이다. 할리웃보울의 음악축제는 우리 2세들과 대화가 통할 수 있는 그들의 팝 문화를 이해하는 시간도 된다. 세계무대로 진출하고 있는 K-팝의 현 주소를 아는 시간도 된다. 서로 바쁘게 돌아가는 생활 속에 한동안 못 만났던 반가운 친구들과 만나 음악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최청원 내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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