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더 이상 ‘골든’ 아닌 캘리포니아

2018-03-23 (금) 조환동 부국장·경제특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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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50개주마다 주를 상징하는 별칭이 있는데 캘리포니아주는 ‘더 골든 스테이트’(The Golden State)라고 불린다.

역사적으로 가주는 지난 1848년 북가주 콜로마와 시에라 네바다 지역에서 금광이 발견된 후 급속도로 이주자가 늘어 발전하고 커진 주이다. 그리스어로 ‘발견했다’를 뜻하는 유레카(eureka)가 가주의 모토인 것도 금광 발견과 연관이 있다. 그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주의 별칭이 ‘황금의 주‘ 라고 불린다. 금은 인간에게 부와 풍요로움의 상징이기도 하다. 실제로 많은 미국인에게 가주는 미국의 도전정신과 낭만적인 삶과 부를 상징하는 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가주에 살고 있는 주민에게 가주는 갈수록 살기 힘든 곳이 돼가고 있다. 최근 가주의회 산하 정책분석국이 연방 국세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07년 부터 2016년까지 가주로 유입된 인구보다 가주를 떠난 인구가 100만명이나 더 많았다. 이 기간 타주로 이주를 선택한 가주 주민이 무려 600만명에 달한다.


기자가 아는 한 지인의 아들은 대학 졸업 후 입사한 미국 기업으로부터 텍사스와 남가주 근무 중 한 곳을 선택할 것을 제시받은 후 텍사스를 선택했다. 이 젊은이는 “연봉 8만달러를 받으면 텍사스에서는 집을 사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지만 남가주에서는 이 월급으론 집은커녕 부모님에게 손을 벌려야할지도 모른다. 텍사스는 주세금도 없고 렌트와 물가 등 모든 면에서 저렴하다”고 텍사스 근무를 자처한 이유를 밝혔다. 부모 입장에서 외아들을 가까이 두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아들의 이유를 듣고는 붙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주위를 보면 이같이 직장을 구해도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님과 함께 사는 한인 ‘캥거루족’들이 많다. 어렵게 독립을 한 한 한인 젊은이는 “소득의 반 이상을 주거비로 내고 나면 외식, 엔터테인먼트, 의류 구입 비용을 아껴야하고 데이트할 엄두도 못 낸다”고 하소연한다.

텍사스는 네바다, 워싱턴, 플로리다, 앨라스카, 와이오밍, 사우스다코타와 함께 아직도 주 세금이 없는 7개 주이다.

올해 들어 LA 타임스는 홈리스와 함께 가주 내 치솟는 주택가와 렌트비, 생활비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주민들의 애환을 담은 스토리를 탐사 시리즈로 다루고 있다. 벌써 10여차례 나갈 정도로 그 내용과 깊이면에서 LA 타임스 역사상 가장 포괄적인 시리즈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LA 타임스는 “가주 내 실업률이 하락하고 있지만 조금만 들어가 보면 너무나 많은 주민들이 하루하루를 힘겹게 페이체크에서 페이체크로 살아가고 있다”며 “특히 남가주의 높은 주택가격과 렌트비가 상징하는 주거비용의 불평등은 가주 역사상 가장 심각하기 때문에 이번 시리즈를 시작한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이번 LA 타임스 보도 중에는 4남매가 집이 없어 작은 RV에서 침대를 나눠가며 살고 있는가 하면 집값이 낮은 외곽지역에 살면서 새벽 3시30분에 집에서 떠나 LA까지 3시간 운전을 하는 주민들이 소개되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젊은이들은 디즈니랜드와 스타벅스 등에서 일하면서 렌트를 감당하지 못해 차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사실 남가주에서 주택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공급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정작 주민들이 필요한 주택과 아파트가 공급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LA 다운타운과 LA 한인타운만 해도 1만채가 넘는 아파트 유닛이 최근 완공됐거나 공사 중에 있다. 문제는 이들 아파트들이 1베드가 2,000달러, 2베드가 3,000달러를 넘는 비싼 렌트비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가히 ‘풍요속의 빈곤’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가주부동산협회에 따르면 중간 가격대인 55만달러대의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소득능력을 가진 주민이 25%에 불과하다. 남가주 기업들은 근로자들이 집값이 비싼 남가주에서 근무하기를 기피하면서 직원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일본이 10년간의 장기적인 불황을 겪은 것도 서민들이 부담할 수 없었던 주택 가격이 주요 근본 원인이었다며 가주도 주거비용을 잡지 못할 경우 ‘황금의 주’가 아닌 ‘녹슨 주’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주택 전문가들은 정부가 나서 개발업자들이 중·저소득층 주민을 위한 저렴한 아파트와 주택 신축을 지을 수 있도록 세제혜택 제공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건설업자들이 럭서리 주거용 건물 보다 중·저소득층 주거용 건물을 신축하면 돈을 벌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한다는 것이다.

<조환동 부국장·경제특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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