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죽음준비 청소

2018-03-17 (토) 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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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인 M씨 집 앞을 지나다가 차고 바깥에 큼지막한 보따리가 10여개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이사하시게 되었어요?” 하고 물었더니 M씨 부인은 웃으면서, 이사 하는것이 아니라 집안 정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M씨 부부는 30년 동안 현재의 집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바쁘게 살다보니 집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는데, 요새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면서 집수리를 하려고 정리를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 사흘째로 접어들었는데 아래층, 이층, 이방,저방,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있는지도 몰랐던 물건들이 꾸역꾸역 쏟아지는데, 첫날은 아침에 시작해서 오후가 되니까 머리가 빙빙 돌도록 어지러웠다고 했다. 수북이 쌓여있는 물건들 중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두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했다.


노년에 접어든 사람들에게 M씨 부부의 경험담은 낯설지 않다. 보통 때는 모르고 있다가 이사할때나 집안정리 할 때, 사람들은 오랜 세월 무심코 쌓아놓은 물건들에 첩첩
이 둘러싸여 지내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집안에 물건들이 쌓이는것은 노년층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주택가를 걷다보면 젊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의 차고도 잡다한 물건들로 가득 차서 정작 차들은 길가에 세워 놓은 집이 많다.

지난 1월 타임지에는 ‘ 죽음준비 청소(death cleaning)’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짤막한 기사가 실렸다. 저자는 서두에서 “이 지구상을 떠날 때가 가까워지 면 불필요한 물건들을 버리고 집안을 깨끗하게 정돈해서, 사후에 사랑하는 가족들이 유물 처리하느라고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부담을 주지 않게 하는 것이 바로‘ 죽음준비 청소’ ” 라고 했다.

대대로 살아온 저택이나 부유층 집에서는 주인이 ‘죽음준비 청소’를 못하고 세상을 떠났을 때, 유족들은 유물정리 회사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고인이 남긴
산더미 같은 유물 중에서 유족이 보유하고 싶은 물건, 팔거나 기부할 물건,쓰레기통에 들어갈 물건들로 분리해서 처리해주는 것이 회사 서비스의 첫 단계라고 한다.

죽음준비 정리가 큰 부담이 되지 않으려면 평소에 정리하며 살아야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물건을 마구 사들이는 충동구매 습관을 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가
40대 젊은이에게 핀잔을 받은 적이 있다.

“김 여사님, 사람들이 왜 노인인구의 증가를 반가워하지 않는 줄 아세요?
매년 나오는 새 유행 옷대신 20년 전 옷을 입고, 5달러짜리 라떼 대신 75센트짜리 맥도널드 커피를 마시고, 최신 성능의 부엌기구대신 수십 년 된 구닥다리 용품을 쓰면서
돈을 꽉 쥐고 있으니, 경제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 즉시 대답을 못했는데, 아직도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신상품은 계속 쏟아 져 나오고, 사람들은 경쟁하듯 열심히 사들이는 현상이 계속되면, 가까운 장래에 유물정리회사의 서비스는 상류층뿐 아니라,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확대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지구상을 떠날 때가 가까워 오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자손들을 위해서 유물정리 비용을 따로 남겨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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