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상대방을 향한 유연성

2018-03-15 (목) 12:00:00 정소영 / 검색엔진컨텐츠 전문가
크게 작게
우리 아이들은 나를 닮아서 질문이 많다. 친구관계, 내적갈등들을 빠짐없이 물어보면 나는 답하기 어려워진다.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은 나에겐 넘어야 할 산이다. 순간 올라오는 짜증을 누르고 차근차근 말해주려고 노력하지만, 내 대답이 시원찮을 땐 어김없이 다양한 역질문이 되돌아온다.

아이들이 배웠으면 하는 활동, 가졌으면 하는 가치관들을 그들에게 진심으로 동기부여하기란 참 어렵다. 흔한 예로 공부, 악기, 운동 혹은 종교. 어릴 땐 그저 재미로 받아들인 활동들에 아이는 커갈수록 점점 더 많은 질문을 던진다.

“왜 엄마의 종교를 믿어야 하죠?” “왜 공부를 해야 하죠?” “왜 좋은 학교를 가야 하죠?” 첫째 세빈이 처음 질문했을 땐 ‘왜 이런 걸 물어보지? 반항하나?’ 생각이 들어 “그냥 하면 안 돼?” 하고 아이에게 살짝 강요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아이는 해소될 때까지 물어본다. 그때 깨달았는데 이 아이는 ‘반항’이 아니라 정말 ‘궁금’했던 거였다. 그걸 파악한 뒤론 열심을 다해 설명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자기의견이 무조건 옳기에 따라야 한다고 접근하는 사람들을 가끔 만난다. 그 마음에 어떤 절실함이 있는지 표면적으로는 느껴지지만 너무 세련되지 못한 접근이 실망스럽다. 나 역시 어른이 되면서 나만의 가치관과 아집이 생긴다. 그럴 때 상대방에 대한 조금만 더 세련된 유연성을 갖게 된다면 좀 더 나은 나, 좀 더 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정소영 / 검색엔진컨텐츠 전문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