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유훈

2018-03-09 (금) 최수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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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유훈

최수잔 수필가

엄마는 꽃을 무척 좋아하셨다. 식사를 못하고 수프나 인슈어 등으로 연명하실 때도 앞뜰 꽃밭에 나가 꽃을 하나씩 만지고 물을 주면서 “그동안 내가 아파 널 돌보지 못해서 이렇게 잎이 다 말랐구나”라며 대화를 나누는 등 사랑으로 대화하셨다.

엄마는 우리 6남매와 13명의 손주들 하나하나를 사랑으로 어루만지고 각자의 향기와 색깔에 맞는 이름을 부르면서 함박꽃 같은 웃음을 지으셨다.

누구 생일이면 아무리 힘들어도 왕복 30분 이상 거리를 걸어가 카드를 사서 연분홍 사랑을 담은 글씨를 쓰고 생일선물로 용돈을 담아 보내시곤 했다.


입관 예배 때 조사 순서에서 모든 손주들이 할머니 곁에 둘러서서 할머니를 상징하는 단어를 하나씩 이야기했는데 “사랑, 절약, 정직, 근면, 겸손, 친절, 믿음, 희생, 온유, 지혜, 진실, 깔끔”하신 할머니였다고 해서 모든 조문객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죽음은 생명근원의 회귀인가 보다. 몸은 완전히 소멸되어도 그 생명의 결정체가 자손들에게 전수된 걸 느낀다.

엄마는 “형제끼리 화목하고 남에게 베풀며 살아라”라고 유언하셨다. 무남독녀인 엄마는 늘 외로움을 타셨다. 그래서인지 자식들을 무척 소중히 여기고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가족처럼 대하셨다. 미션스쿨을 나와서 학교 선생을 하시던 엄마는 늘 성경을 가까이하며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려 했다.

스스로 지탱하기 벅찬 91년이란 긴 세월을 안고 이 세상에 쉼표를 찍으실 때까지 머리가 희어진 딸을 어린아이처럼 걱정하고, 한평생 자식들의 행복을 바라셨던 엄마, 이 세상에 ‘엄마’처럼 함축된 단어로 사랑과 정겨움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또 있을까? 엄마의 부재를 느끼는 요즘, 너무 그리워 엄마생각에 숨이 멎을 것 같지만 엄마가 보여주신 모범된 삶을 본받아 어제에 연연하지 않고 오늘을 꽃처럼 풋풋하고 생동감 있게 살려 한다.

<최수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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