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의 의견-외할머니의 솜씨

2018-03-05 (월) 한연선 / 교육학 박사
작게 크게
봄이 성큼 들어섰다. 따뜻한가 싶더니 다시 쌩하니 찬바람이 분다. 봄이 되면 변화무쌍한 봄 날씨를 빙자해 나도 새로운 것 한 두 가지 쯤 해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그간 지겨웠던 플라스틱 블라인드를 모두 커튼으로 바꾸기로 했다.

주문한 커튼을 창문에 대어 보니 많이 길다. 수선집에 들러 견적을 내었더니 패널 하나당 26달러를 불렀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고시랑거리며 내가 직접 하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와 바느질함을 꺼냈다. 시집올 때 어머니가 무형문화재 가게에서 주문해 주신 것이다.

바느질에 별 관심이 없어 미싱도 없다 보니 믿을 건 이것뿐이다. 커튼 색에 맞춰 실을 고르고 바느질을 시작했다. 바늘이 애벌레처럼 꿈틀꿈틀 지나가면 단이 고정된다. 신통방통하다.


사실, 바느질하면 우리 외할머니인데! 외할머니는 어머니와 이모들의 옷이며 이불을 직접 지어주셨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외할머니가 지어주신 비단 이불들이 많았다. 그때는 이불 빨래를 하려면 이것들을 일일이 다 뜯어내어 빤 후 다시 바느질로 고정해야 했다.

어머니는 번거로웠겠으나 나는 이부자리 바느질이 시작되면 단숨에 달려가 그 위로 몸을 던졌다. 부드러운 비단 위에 누워 어머니가 바느질을 하면서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고 행복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바느질을 할 때면 비단 이불과 내 어머니의 손길, 그리고 외할머니의 솜씨가 늘 함께 기억이 난다.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해도 결국 커튼 줄이기를 완성했다. 외할머니가 보셨다면 칭찬해 주셨을까? 사실 내게 외할머니의 뛰어난 솜씨가 유전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잘하면 잘하는 대로 서툴면 서툰 대로 용기를 내어 새로운 일을 해냈다는 것 하나는 칭찬감이다 생각하니 창 곁에서 살랑이는 커튼이 더욱 뿌듯하다.

<한연선 / 교육학 박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