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LA 필하모닉 100돌

2018-03-02 (금) 정숙희 부국장·특집 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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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화려해서 눈이 부시고, 너무 원대해서 숨이 차다. 내년에 100주년을 맞는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LA Philharmonic)의 센테니얼 프로그램 이야기다.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2018/19 시즌 보도자료를 들여다보니 내년 말까지 이어지는 축하 팡파르가 어찌나 요란한지 벌써부터 흥분이 몰려온다. 클래식 음악이 죽어간다고 다들 한숨 쉬는 시대에 이처럼 야심찬 계획이라니, 과연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오케스트라’(뉴욕타임스 평가)요, 미국에서(아마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오케스트라답다.

오는 9월말 시작되는 100번째 시즌은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외벽 전체에 오케스트라의 한 세기를 보여주는 이미지를 비디오와 오디오로 투영, 이 멋진 건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어 다운타운에서 할리웃보울까지 통제된 거리는 ‘시클라비아’ 자전거축제의 장이 되어 하루 종일 스트릿 페어와 야외 연주가 열리고, 할리웃보울에서는 구스타보 두다멜 음악감독이 지휘하는 무료 콘서트가 밤하늘에 울려 퍼진다.

그 다음 9개월 동안 일어나는 일들은 음악계를 뒤흔들만한 혁신의 연속이다. 우선 현대작곡가들에게 위촉한 신곡만 54개에 이른다. LA 필은 워낙 신곡 위촉을 많이 하고 초연도 많이 하기로 유명하지만 한 시즌에 50여곡을 위촉하고 초연한다는 건 음악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중에는 재독 작곡가 진은숙도 포함돼있고(내년 4월 초연), LA 필의 수석객원지휘자였던 마이클 틸슨 토마스(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음악감독)가 신곡을 소개할 예정이며, 존 애덤스가 유자 왕을 위해 쓴 피아노 협주곡, 필립 글래스의 심포니 12번의 세계초연도 있다.

역대 음악감독들도 초청됐다. 주빈 메타와 에사 페카 살로넨은 물론이고, 운영진과의 불화로 30년전 LA 필을 등지고 떠난 후 한번도 돌아오지 않았던 앙드레 프레빈까지도 100돌 축하행렬에 동참키로 했다. 이들은 각자 특별 프로젝트를 마친 후 LA필이 100회 생일을 맞는 날(2019년 10월24일) 다시 모여 메타, 살로넨, 두다멜이 모두 포디엄에 오르는 사상 유례없는 공연으로 센테니얼 축제의 막을 내리게 된다.

댄스, 연극, 영화, 시각예술, 미디어아트 등 예술분야를 모두 아우르는 콜래보레이션 또한 화려하기 그지없다. 유명 안무가 벤자민 밀피예(나탈리 포트만 남편)와 아메리칸 발레가 함께 하는 ‘로미오와 줄리엣’, 셰익스피어극단 ‘올드 글로브’와 함께 하는 ‘템페스트’, 오페라연출가 유발 샤론이 기획하는 존 케이지의 ‘유로페라스 1 & 2’, 게티연구소가 참여하는 ‘플럭서스 페스티발’, 스탠리 큐브릭과 존 윌리엄스의 영화음악 상영과 라이브 연주…

이쯤 되면 오케스트라의 정의를 다시 써야할지도 모르겠다. 너무 많아서 다 열거하기도 힘들고, 참여하는 공연자들 역시 너무 많은데다 모두 ‘세계적’이니 거론하지 않기로 한다.

그런데 이렇게 대단한 2018/19 시즌 프로그램 가운데 특별히 흥분되는 것은 한국의 자랑,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포함됐다는 사실이다. 조성진은 LA 필이 세계적인 스타 연주자들을 초청하는 ‘콜번 셀러브리티 시리즈’의 시즌 첫 연주자로 오는 10월24일 디즈니 콘서트홀 무대에 데뷔, 쇼팽과 드뷔시를 연주한다.


이번 시즌 콜번 명사 시리즈에 초청된 연주자들은 장 이브 티보데, 고티에 카푸송, 안네 소피 무터, 이츠학 펄만, 머레이 퍼라이아 등 최정상 연주자들로서, 조성진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상을 인정받은 것이 무척이나 흐뭇하다.

이외에도 콘서트홀 밖에서 이루어지는 대형 프로젝트 중에는 청소년오케스트라 욜라(YOLA) 센터의 건축(프랭크 게리 디자인)과 ‘미래’를 위한 5억달러 모금 캠페인이 있다.

‘미래’는 LA 필하모닉과 구스타보 두다멜 음악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다. 청소년 음악교육에 유난히 열정을 쏟는 이유도 음악이 아이들의 미래를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믿음 때문이다. 센테니얼 시즌 동영상에서도 두다멜은 지난 100년의 역사가 아니라 다가올 미래의 100년을 이야기하면서, LA 도시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이 음악의 힘과 함께 빚어낼 밝은 미래를 향해 다함께 가자고 초대한다.

LA 필의 슬로건 ‘우리 도시, 우리의 음악’(Our City, Our Sound)이 가장 아름답게 들려오는 센테니얼 시즌이 될 것 같다.

<정숙희 부국장·특집 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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