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감(遺憾), 평창올림픽

2018-01-22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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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빨리, 보다 높이, 보다 힘차게’(Citius, Aitius, Fortius)-.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의 모토다. 승리보다는 참가에 의의가 있다. 국가 대항전이 아니라 개인들의 영광이다. 국력이니 정치와 무관하다. 오직 세계 평화와 인권을 위한 것이다. 올림픽정신을 말하는 거다.

이상(ideal)은 고매하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올림픽 역사는 정반대 사태로 점철돼 왔다.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다. 그것이 현실의 올림픽이다.

1896년 프랑스의 쿠베르탱 남작이 창시한 근대 올림픽은 시작부터 정치적 갈등 속에 치러졌다. 아테네에서 열린 첫 올림픽경기에 터키는 초대받지 못했다. 그리스와 갈등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1900년 파리올림픽도, 1908년 런던올림픽도 정치문제로 얼룩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정치에 오염된 최악의 근대올림픽은 1936년 베를린 대회다.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과시하는 나치의 선전무대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36년 후 독일 땅에서 다시 올림픽이 열린다. 뮌헨 올림픽이다. 이 1972 뮌헨 올림픽은 여러모로 베를린올림픽과 대조를 이룬다.

냉전시대에 최전방을 담당하고 있었다. 서독과 동독이다. 이런 정황에서 당시 브란트 사민당 정부는 동서화해를 추구하는 동방정책과 함께 뮌헨 올림픽의 공식 모토로 ‘평화와 기쁨’을 내걸고 동독선수들을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맞아들인 것. 그러나 일방적 짝사랑으로 끝났다.

동독은 서독 국민들의 호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올림픽을 체제선전무대로 이용하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그 결과 당초의 기대와 다른 현상이 벌어졌다. 서독 국민들의 애국심에 불을 지핀 것. 동독선수는 외면하고 자발적으로 서독국기를 들고 서독 선수만 응원하는 상황으로 번진 것이다.

이 뮌헨 올림픽은 그리고 그 공식 모토 ‘평화와 기쁨’과는 정반대로 기록된다. 팔레스타인 테러조직 ‘검은 9월단’의 이스라엘 선수단 인질사태로 17명이 목숨이 희생되면서 ‘피의 올림픽’이 되고 만 것이다.

이제 3주도 채 안 남았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이. 88 서울올림픽에 이어 30년 만에 또 다시 한국 땅에서 열리는 이 평창올림픽은 그러면 어떤 올림픽으로 기억되게 될까.

‘평창이 아닌 평양올림픽으로 기억되는 것은 아닐까’-. 외국인들의 귀에는 그렇지 않아도 두 지명이 비슷하게 들린다. 게다가 남북합의에 따라 대형 남북이벤트들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평창올림픽 전야제 격인 금강산 문화제가 바로 그 하나다. 어린이 강제노역장으로 국제사회에 고발된 북한의 마식령에서의 남북선수 공동훈련도 예정돼 있다. 그리고 북한의 응원단, 예술단 등, 다시 말해 ‘북한체제 선전요원’ 500여명이 서울과 강릉에서 공연행사를 갖는다.


이러다 보니 스포츠는 아예 뒷전이다. 온통 남북정치에, 현송월이니, 어쩌니 하는 북한 연예인 이야기뿐이다. 이에 편승해 북한의 선전전은 벌써부터 요란하다.

‘우리민족끼리’란 말이 북한 관영언론에 부쩍 자주 나온다. 그러면서 평창올림픽은 북한이 주도하고 있는 통일운동의 일환인 양 다룬다. 평창올림픽 개막 바로 전날인 2월8일 북한은 뜬금없이 인민군 창설 70주년 열병식을 개최한다고 발표한 것도 그렇다.

뭐랄까. 대한민국이 아닌 북한이 2018 동계올림픽 주최국이라도 된 것 같다. 한편으로는 올림픽참가를 통해 국제사회에 평화공세를 편다. 동시에 군사퍼레이드를 통해 핵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과시한다. 평창올림픽을 김정은의 북한은 체제 선전무대로 개막전부터 제멋대로 마음껏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최악의 인권탄압국이다. ‘평화의 제전’ 올림픽에 참가할 자격조차 의심될 정도다. 그런 주제꼴에 핵과 미사일로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평창올림픽은 벌써부터 그런 김정은의 북한체제의 선전무대가 되고 있다. 그러니 평창 아닌 평양올림픽이란 말이 나올 수밖에.

어쩌다가 평창올림픽이 ‘김정은 주연의 저질 정치 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일까. 그 답의 한 갈래는 문대통령의 평화올림픽에의 간절한(?) 염원에서 찾아지는 것 같다. 어떻게든 전쟁은 막아야 한다. 그 돌파구는 평화올림픽 밖에 없다. 때문에 어떤 양보를 하더라도 대화국면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런 충정의 발로에서 빚어졌다는 해석이다.

딴은…. 그러나 그보다는 이도저도 아닌 ‘좌파정권의 본색발로의 결과 일뿐’이라는 것이 더 정확한 진단이 아닐까. 남북문제를 바라보는 프레임자체가 전통 대한민국의 입장과 다르다. 추구하는 핵심가치가 다른 것이다. 그게 자연스레 드러난 결과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북한의 정치 쇼 무대로 전락해가고 있는 평창올림픽’- 꽤나 답답하다. 그렇다고 반드시 ‘배드 뉴스(bad news)만은 아닌 것으로 들린다. 남북선수단 공동입장, 여자 아이스하키단일팀 구성, 그리고 선수 10명에, 응원단 500여명 파견 합의 등 평창올림픽관련 일련의 남북합의 사항을 바라보는 국내의 여론이 여간 냉랭한 게 아니라는 뉴스가 전해져 하는 말이다.

이 모든 결정의 몸통은 현 권력의 핵심임을 국민들은 알게 됐다. 그들은 추구하는 핵심가치가 보통의 대한민국 국민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아야 하나. ‘항일’(抗日)이란 말이 언제부터인지 좌파의 전유물이 됐다. ‘촛불’도 그렇다. 불의한 권력에 대한 저항이 촛불이다. 그 촛불이 어느 틈에 좌파의 코드처럼 됐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는 ‘촛불민심’이라는 이름으로 폭주를 해왔다. 그 ‘오도된 촛불의 의미’를 되찾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어처구니없는 ‘평창 정치 쇼’를 계기로 새삼 일고 있는 것이다.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구성합의에 격한 비판이 일고 있다. 또 태극기 대신 한반도기를 들고 남북선수가 공동으로 올림픽 개막식에 참가한다’는 데에 과반수가 훨씬 넘는 한국국민이 반대하고 있다. 이런 여론조사결과에 주목하면서 주요외신들은 ‘촛불에 마비’돼 있던 한국에서 거대한 ‘백래시’(backlash-반동)가 일고 있다고 일제히 보도하고 있다.

30년 만에 한국에서 다시 열리는 올림픽- 기대보다는 피로감이 먼저 몰려온다. ‘자나 깨나 원수님만 생각 한다’는 북한의 미녀응원단. 이미 식상한지 오래다. 그리고 오직 평화 올림픽만을 위해 존재하는 양 호들갑떠는 문재인 정부. 그 모습이 너무 민망해 보여 하는 말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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