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AI로 인간게놈 정복… 앞으로 걸릴 질병도 미리 치료”

2018-01-17 (수) 보스턴= 손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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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소니스 하버드대 암센터 교수

▶ 빅데이터 기술 등 이용하면, 후보물질 선정 작업 가속도, 신약개발 기간도 단축 가능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에 힘입어 인간 게놈(유전체) 정복에 속도가 붙으면서 미래에 발병할 질병에 대처할 시대가 곧 열릴 것입니다.”

암 치료제 개발의 세계적 권위자인 스티븐 소니스(사진) 하버드대 의대 암센터 교수는 새해를 맞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하며 5~10년이 걸리던 신약 개발 기간도 대폭 단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니스 교수는 의학 기술의 빠른 발달을 기대하면서도 “좋은 신약을 개발하는 일은 10년을 넘기기 십상”이라며 신약 개발에는 뚜렷한 비전과 긴 안목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금도 일주일에 70시간을 연구에 몰두하면서 바이오 기업 2곳을 경영하는 그는 “창업을 통해 기술의 시야를 넓히고 네트워크를 확대할 수 있다”며 연구인력의 스타트업 설립을 권유하기도 했다.

-보스턴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바이오 산업의 중심으로 커나가고 있다. 비결은 무엇이라고 보나.


▲하버드대뿐 아니라 보스턴에는 훌륭한 교육기관과 석학들이 포진해 있다. 바이오 분야는 갈수록 세분화하는 지식산업이어서 인재들이 중요한데 신약 개발은 특히 연구자 간 신뢰와 협업이 중요하다.

수십년 넘게 대학을 중심으로 공동연구 환경이 안정적으로 조성된 점이 빛을 발하는 것으로 본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 때 언제든 대화하고 조언해줄 똑똑한 동료들이 바로 옆집에 있다는 것이 보스턴만의 장점일 것이다.

-하버드대나 매사추세츠 공대(MIT) 재학생들이 최근 바이오 분야의 ‘스타트업’ 창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학생들의 창업을 어떻게 평가하나.

▲가끔 상상을 뛰어넘는 학생들을 만난다. 20년 넘게 구강암 분야를 연구한 나도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를 척척 제시하는 학생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천재라도 특정 연구에만 몰두하면 시야가 좁아질 수 있는데 기업을 만들고 운영하면 폭넓은 사고와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어 학생들에게 창업을 권장한다.

나 자신도 바이오모델과 PES 등 2개 회사를 창업해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데 연구계획을 구체화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다만 돈 버는 것이 창업의 주된 목적이 되면 곤란하다. 제약·바이오는 연구 성과를 얻기 위해 5년, 10년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단기 성과에 집착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보스턴의 바이오 산업 잠재력이 강력한 만큼 미국 내 기업들뿐 아니라 중국·일본·중동 등 해외에서도 많은 자본이 들어오는 것으로 안다.

▲미국 정부 차원에서 신약 개발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글로벌 제약사들도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요즘 보스턴의 차이나타운이 매우 붐빈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바이오 산업은 돈의 불일치가 많은 대표적 분야다.


신약의 콘셉트를 잡고 개발을 진행하는 임상 전 단계에 많은 투자가 필요하지만 벤처캐피털이나 엔젤투자자들도 쉽사리 나서지 않는다. 반면 임상 데이터가 축적되고 임상실험이 진행될수록 돈이 몰린다. 미 국립보건원(NIH)이나 각국 정부의 예산이 신약 개발에서 좀 더 위험도가 높은 부분에 많이 투입돼야 한다.

-연구활동과 회사 경영을 병행하는 데 어려움은 없는가.

▲두 가지 일이 한 줄기로 연결돼 있어 여러 가지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공동 창업한 바이오모델은 항암제 신약을 개발할 때 필수적인 동물 실험을 하는 곳이다. 연구가 잘되면 회사도 잘되는데 반대인 경우 스트레스가 두 배가 되기는 한다(웃음).

신약 개발 업무에서 가장 힘든 것은 어떤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엄청난 아이디어를 발견했다고 여겼는데 임상실험에서 종종 실패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개인적 좌절감도 있지만 환자들을 생각할 때 아쉬움이 크다.

신약 개발에 성공하고도 식품의약국(FDA) 등 당국과의 협의에서 너무 비싼 보험이 적용될 때도 힘들다. 임상적 측면에서 좋은 약이라도 비용 대비 효익이 낮다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후 신약 개발 등에서 미국의 규제가 완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어떻게 느끼나.

▲모든 신약 개발 과정은 매우 엄격한 환경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 특히 독성 부분의 연구가 포함될 경우 규제는 불가피하다. FDA나 NIH 등 관계기관 역시 신약의 독성을 시험하고 평가할 때는 꼭 방문해 확인한다. 하지만 독성 연구 등 위험한 분야가 아니면 당국이 별로 간섭하지 않는다. 연구자의 창의력을 존중하는 문화도 잘 잡혀 있다.

-한국의 많은 투자자들이 바이오 산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어떤 신약인지 밝힐 수 없지만 얼마 전 신약 실험을 끝냈는데 매우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그 약을 연구하고 개발해내는 데는 11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벤처캐피털은 투자수익을 기대하다 3~4년 만에 나가떨어졌다.

그들을 나무랄 수는 없지만 연구가 결실을 보는 데 11년이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다. 바이오 분야에서 신약 개발에는 뚜렷한 비전과 긴 안목, 인내심이 필수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스티븐 소니스는 구강점막염 치료물질 한국회사와 공동 연구도

스티븐 소니스 하버드대 의대 암센터 교수는 암 치료와 치료제 개발의 세계적 권위자다. 터프츠대에서 치의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소니스 교수는 특히 항암제나 방사선으로 유발된 독성의 원인을 규명하고 이를 치료하는 연구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의사이자 연구자로 꼽힌다.

특히 그는 국내 코넥스시장의 대장주인 엔지켐이 암환자 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강점막염 치료후보 물질로 ‘EC-18’을 개발해 미 식품의약국(FDA)의 임상 2상 허가를 얻은 가운데 올 2월부터 공동연구에 참여하게 돼 국내 바이오 시장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소니스 교수가 암 치료와 관련해 발표한 논문 및 저작물은 총 250여편이며 보유 특허도 5건에 달한다.

<보스턴= 손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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