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 중에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말이 있다. 올해가 개띠(무술년)해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냥이 끝나면 개를 잡아먹는다’는 사자성어만큼 개같은(?) 인간의 모습이랄까, 개를 연관지어 인간의 아이러니한 일면을 보여주는 이야기도 없을 것이다. 동물 중에서 개 만큼 인류와 가깝고, 또 인간에게 팽당하는 동물도 없다.
개는 태어나자마자 사람에 의해서 운명이 결정된다. 물론 일부 야생개(들개), Stray dog(집없는 개) 등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개라는 종자들은 사람과 가장 가까이 지내면서 한평생 사람이 던져주는 먹이 주위나 돌면서 주인에게 아첨하다가 일생을 마치기 마련이다. 그중에는 간혹 잘못 태어나 식용으로 무참히 도살되기도 하고 주인에게 충성을 바치다가 나중에는 토사구팽 당하기 일쑤인 개들도 허다하다.
물론 개팔자도 이제는 한결 나아져 반려견이니 애완견이니하는 시대가 도래, 개도 이제는 함부로 도살당하거나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경우가 점차 줄어드는 추세이나 아직도 개만큼 인류와 가장 가까이 지내면서 동시에 가장 학대 당하는, 아이러니한 동물도 없을 것이다.
신년을 맞아 새삼 개 얘기를 꺼낸 것은 올해가 바로 ‘개띠 해’이기도 하지만 역사 이래로 개를 학대(?)해 온 인류가 이제는 그 스스로 토사구팽 당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다름아닌 인간의 기대 수명이 높아지면서 은퇴인구가 앞으로 수년내지 수십년 안에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산업전선에 남아있기에는 그렇고 그렇다고 아직 손놓고 있기에는 이른 나이의 수많은 인구들이 앞으로 다가 올 수 십년(decade) 의 노후대책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나라에서도 이들을 먹여살려야 할 막대한 예산 때문에 고민은 늘어가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살아갈 일이 쑥스럽고도 막막하다. 어쩌면 인류의 대 재앙이 될 앞으로의 사태를 타개하기 위해 모두들 골머리를 짜내고 있지만 선진국은 선진국대로, 후진국은 후진국대로 마땅한 대안이 있을리 만무하다.
‘토사구팽’이란 춘추시대 월나라 때 생긴 말이라고 한다. 초한지에서 유방이 한신을 죽인 것에 비유되기도 하는데 문자 그대로 토끼사냥(兎死)을 끝냈으니 이제 필요 없게 된 개는 삶아 먹게 된다(狗烹)는 뜻이다.
인생의 원리나 이치를 따지기에 앞서 토사구팽은 은혜를 모르는, 아니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인류의 악한 면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지만 역사 이래… 아니 동서고금을 막논하고 토사구팽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는 없었다.
한신을 죽인 유방, 건국공신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한 주원장, 조선시대의 태종 이방원 등 그 예를 일일히 열거하자면 끝이 없지만 한편으론, 토사구팽이 없을 경우 그 반대로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에서, 토사구팽은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에게 큰 상처를 입히는, 어쩌면 인류의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요소일지도 모른다. 즉 토사구팽이란 누구나 피하고 싶은 필연이지만 인생의 아이러니는 인생에는 반드시 토사구팽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늙는다는 것, (사랑의 상처)… 혹은 배신하고 배신당하는 것 따위가 어쩌면 스스로에게… 또는 결국은 팽당할 수 밖에 없는 (인류의) 숙명같은 모습인지도 모르지만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인생이란 죽음의 순간을 위해 사는 것’이라고 말했는지 모르지만 평생을 피땀흘려 일하고 때론 죽기를 각오하고 산업전선에서 피튀기게 싸워온 결과가 겨우 늙음이요, ‘팽’일 뿐이라면 인생은 정말 허무할 수 밖에 없다.
초창기 한국가요계의 비화를 담은 영화 ‘해어화’(2016년)는 변질되어 버린 사랑이라는 칙칙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소율(기생이며 가수)이 부르는 ‘사랑은 거짓말’이라는 노래때문에 관객들에게 진한 페이소스를 남기기도 하는데 노래도 좋지만 배신 때린 윤우(작곡가)가 소율에게 남긴 편지는 너무도 인생의 모습을 절절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변질되어버린 사랑, 비열한 자신을 용서하라는 것과 하찮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 소중한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소율이 되질 말기를 당부하는 내용이었다. ‘사랑은 거짓말’이라는 노래와 함께…
개가 토사구팽을 당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개에게는 (사나운) 사냥의 본능이 있기때문이기도 하다. 개의 가장 큰 장점이 결국에는 가장 큰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토사구팽이 시사하는 바 아이러니이기도 하지만, 필요없게 된 개의 이빨은 누구에게도 위협적일 수 밖에 없다.
과거의 화려한 빛에 짓눌려 한신처럼 되기보다는 유유자적 사라져간 장량처럼… 초연하게 은퇴(포기)할 줄 아는 여유도 어쩌면 토사구팽이라는 사자성어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 초월적인 멋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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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