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되돌리기 힘든 ‘합법화’추세

2018-01-0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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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 매드니스’(reefer madness)는 1936년 당시 사회문제로 떠오르던 마리화나를 추방할 목적으로 미국정부와 기독교계의 자금 지원을 통해 만들어진 계몽 영화다. 주인공은 마리화나를 매매하는 범죄자 커플이다. 이들은 마리화나 밀매 조직을 만들고, 순진한 10대 청소년들을 유혹해 마리화나 중독자로 만든다. 그렇게 마리화나를 피운 젊은이들은 온갖 범죄와 악행을 저지른다.

이 영화는 마리화나 사용자들을 철저하게 악마로 그려내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표현이 과장돼 있고 스토리도 개연성이 떨어지는 등 엉성하기 이를 데 없다. 배우들의 연기도 어색하다. 마리화나를 악마시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교훈적인 고전영화로 받아들여지겠지만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내용의 컬트영화일 뿐이다.

‘리퍼 매드니스’의 열렬한 옹호자로 알려진 제프 세션스 연방법무장관이 지난 주 마리화나 합법화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선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세션스는 갱단 등 범죄와의 연계나 청소년 유해성이 없는 한 연방정부가 주정부의 마리화나 관련 결정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한 전임 오바마 행정부 정책을 폐기한다고 밝혔다.


세션스의 이런 방침이 마리화나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 구체적인 단속강화 명령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리화나 업계, 그리고 이와 관련돼 있는 부문들에 심리적인 압박효과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금융부문이다. 연방정부 방침이 나오면서 마리화나 업소들과 거래를 계획했던 많은 은행들과 크레딧 유니언들이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금융기관들은 대단히 보수적이다.

그러나 세션스의 방침이 실제적인 단속으로까지 이어지기는 힘들다. 새 행정부 출범 이후 여전히 공석으로 남아 있는 연방검사 자리가 많은데다 지난 2014년 데이나 로라바커 연방하원의원(공화, 코스타메사)의 공동발의로 통과된 연방예산 수정안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수정안은 연방법무부가 주법을 잘 지키고 있는 의료용 마리화나 사용자나 마리화나 업소들을 단속할 경우 연방예산을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화당인 로라바커 의원은 연방의회의 대표적인 마리화나 합법화론자이다. 흥미로운 것은 로라바커의 경우처럼 상당수의 보수인사들이 마리화나 합법화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논지는 단속위주 마약정책이 오히려 범죄를 부추긴다며 그럴 바에는 차라리 마리화나를 합법화하고 여기에 높은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사용을 통제하는 게 범죄 등 사회적 비용 면에서 더 이득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보수층까지 가세한 마리화나 합법화 여론은 이제 되돌리기 힘든 추세가 되고 있다. 지난 10월 갤럽여론조사에서 마리화나 합법화에 찬성한 미국인은 64%에 달했으며 공화당원들 가운데서도 절반이 넘는 51%가 이에 찬성했다. 세션스가 마리화나 합법화에 제동을 걸고 난 후 불과 몇 시간 뒤 버몬트주 하원은 기호용 마리화나 소지를 합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에서 9번째이다.

현 연방법은 마리화나를 헤로인과 함께 남용의 위험성이 높고 의학용도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불법으로 규제되는 ‘스케줄 1’ 마약으로 규정하고 있다. 세션스의 방침이 나오자 차제에 시대착오적인 연방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마리화나 합법화에 브레이크를 걸려는 세션스의 의도와 달리 새로운 연방정부 지침은 오히려 합법화 움직임을 확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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