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타향병과 향수병

2017-12-16 (토) 양안나 / 수필가
작게 크게
타향병이란 해외에서 몇 년간 머물렀다 고향으로 돌아간 젊은 세대들이 타국에서 먹은 음식과 그 나라 문화를 그리워하는 신조어라고 한다. 오랜 세월 타국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고향에 대한 향수병을 앓는 사람들과는 대조적인 말이다.

예전엔 외국에 대한 정보를 책이나 방송을 통해서 얻었다. 대학시절 전혜린이나 시몬 드 보봐르가 쓴 책들을 읽은 후, 독일이나 프랑스의 도시와 문화를 동경하며 프랑스어를 전공하던 친구와 눈 쌓인 명동거리를 걸으며 막연히 우리도 가보자고 말했었다. 그 시대의 간접 타향병이었을 것이다.

몇 년 전 조카가 군복무 후 복학하기 전에 10개월 동안 어학연수로 이 부근에 왔다. 유럽 배낭여행 경험이 있는 조카는 틈만 나면 친구들과 어울려 기차와 차로 서부 횡단과 캐나다와 멕시코를 드나들었다. 여행을 간다는 말을 할 때마다 오빠가 나를 믿고 보낸 조카가 걱정되었지만 매번 별 탈 없이 웃으며 돌아오곤 했다. 현실을 몸으로 부딪치는 겁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20대였다.


그러다 한국으로 돌아가 스트레스를 받으며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꿈같았던 장면들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타향병이 몇 차례 방문했을 것이다.

서산에 노을 지듯이 이 해도 저물어 가니 옛 일들이 생각이 난다. 내가 갓 미국을 왔을 땐 외로움과 신기함에 편지를 보내는 일이 잦았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낸 후엔 우편함을 여는 낙으로 살았었다. 국내 뉴스뿐만 아니라 집안 얘기에서 사촌동생이 결혼한 얘기, 친구 남편의 승진 얘기까지 구구절절하게 적어 보내주곤 했다.

그중에 필체와 문체가 탁월한 여고동창은 우체국에 편지를 부치러가는 번거로움을 피해 편리한 파란색 항공엽서에 쓰다 지운 흔적도 없이 가슴을 적시는 글을 적어 보내주기도 했다. 그 글들을 보내주던 사랑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이 세상을 작별했거나 병중에 있거나 연락이 끊긴 사람도 있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는 전화 끝에 “언제 서울 나올 거니?”를 한결같이 물으셨다. 이제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언니와 오빠가 막내인 나에게 똑같은 톤으로 묻는다. 안부를 묻고 답을 하는 우리들의 생존 기간이 유한하다는 것이 슬프다.

변화무쌍한 서울을 정신없이 다녀오면, 속시원하게 마음을 열어 놓았던 사람들과 맛깔났던 음식과 익숙한 소리들이 한동안 그리워진다. 나는 타향병과 향수병을 동시에 앓고 있는 게 아닐지.

<양안나 / 수필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