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저가 여행의 묘미

2017-12-08 (금) 김정섭 부국장·기획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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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수-부산-대전 찍고 다시 서울로. 단풍이 서울을 출발해 전국을 물들이기 시작할 때 즈음이었던 10월 마지막주 아내와 누볐던 한국 여행 코스다. 14년 만에 다시 찾은 한국의 놀랄만한 발전과 성숙해진 민도를 눈으로 또 피부로 보고 느끼며 옛 추억을 만끽하고 다녔던 2주간의 값진 여행이었다.

미국에 정착한지 30년 만에 딱 두 번 다녀온 한국은 갈 때마다 내가 살던 고향이었던가 싶을 만큼 빠르게 변해 버렸다. 말만 통하는 외국 같은 이질감도 정겹다.

그동안 한국여행에 선 듯 나서지 못했던 핑계를 아내에게 경비 탓으로 돌리곤 했다. 부부가 2주 휴가 여행을 나서려면 최소 5,000달러는 든다는 계산인데 쉽게 결정할 수는 없다는 변명이다. 그런데 42년전 떠난 한국의 옛 추억을 더듬으며 한국 갈 궁리에 빠져 있던 아내가 불쑥 내민 복안(?)이 나의 궁색한 변명을 단번에 무너뜨렸다. 이민 28년 만인 2004년 방문했던 서울의 천지개벽, 그 와중에도 먹거리 골목에서 찾았던 어릴 적 기억을 또한번 되짚어 보고 싶어 했던 아내가 내놓은 한국 2주 여행 경비는 총 2,300 달러. 비행기와 숙소, 방, 음식, 교통비를 모두 포함해서다.


가장 큰 경비는 비행기 몫이다. 논스톱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면 1인당 왕복 1,000달러(비수기 여행 당시 비용)는 족히 든다. 하지만 우리는 1스톱 한국행 동방항공(차이나 이스턴)을 선택해 단돈 960달러에 해결했다. 물론 왕복이다.

추석 막바지에만도 650달러였던 항공료가 우리가 머뭇거리던 1주일 사이 480달러로 뚝 떨어져 뜻밖의 횡재(?)까지 안겨 줬다. LA에서 상하이를 거쳐 인천까지의 일정이다. 상하이 체류 시간은 2시간50분, 4시간, 7시간 등등, 다양하다. 우리는 하루 묵는 24시간을 선택해 상하이 관광을 덤으로 했다. 하룻밤 묵는 환승객을 위해 항공사는 공항앞 호텔을 무료로 제공하는데 출발 5일전해야 한다는 예약 규정을 놓쳐 그 호텔을 70 달러에 잡았다.

“중국인들이 많이 타 시끄럽다” “음식이 맞지 않는다” “비행기가 낙후돼 불편하고 위험하다” 등등 주변의 줄기찬 조언에 살짝 겁도 났지만 막상 타고 보니 정 반대다. 매우 조용하고 청결했고 2끼 중국음식과 1끼 핫샌드위치, 그리고 1시간30분 비행거리의 상하이-인천 비행기에도 식사가 나왔다. 영화도 볼 수 있고 좌석도 다리를 쭉 뻗고 앉을 수 있을 정도로 길고 넓다.

다음은 숙소다. 피난민 후손인 우리 부부는 친척이라고는 큰누님뿐이지만 마지막날 인사차 들러 하룻밤 지내기로 하고 요즘 유행하는 숙박 공유 업체 ‘에어비앤비’(airbnb)를 선택했다. 12박 총 경비 500달러. 4개 도시를 누비려면 하룻밤 호텔비만 최소한 100달러(주변에서는 방음 안되는 러브호텔 값이라고 함)는 족히 들 것이고 12박이면 아무리 적어도 1,200달러 이상은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이것도 에어비앤비가 간단히 해결해 줬다.

도착후 서울서 3박 비용이 81달러. 효창공원 앞 연립주택의 아기 둘 있는 젊은 부부가 내놓은 방값이다. 소주까지 대접하는 이들 부부가 고마워 아기들 과자 값과 미국서 가져간 초컬릿 한박스를 내려놓고 나왔다.

여수 돌산대교가 내려다보이는 아담한 오피스텔 독채는 하루밤 35달러. 청소비 19달러까지 합하면 이틀밤에 100달러로 해결된다. 세탁기가 있어 빨래까지 말끔히 할 수 있다. 운좋게 여수 이순신 광장에서 열린 마칭밴드 페스티벌에서 한국 육군 군악대의 신명나는 공연도 감상했다.

부산은 용두산 공원이 1분거리인 남포동 오피스텔. 가격은 하룻밤 37달러에 청소비 15달러다. 역시 세탁기와 취사도구가 완비돼 있다. 도착하는 날 마침 1년에 한번 열린다는 광안리 해수욕장 불꽃놀이 축제를 관람하는 호사도 누렸다. 서울 강남역 지척의 15층짜리 현대식 오피스텔 독채는 하루 57달러 청소비 18달러. 모두 호텔보다 편한 우리만의 휴식 공간이다.

철저히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촘촘히 이어지는 지하철과 시내버스, 총알처럼 달려가는 KTX 고속철, 내부가 비행기 같은 고속버스, 그리고 골목을 누비는 마을 버스 등등. 버스는 교통 카드를 구입해 충전하고 한번 탈 때마다 1인당 기본 1,200원으로 사람, 거리 구경시켜주며 어디든 데려다 준다. 교통비는 모두 합해 300달러도 들지 않았다. 젊은이들의 배낭여행에 이런 재미가 숨겨져 있구나 싶다.

요즘 여행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시차가 아니라 내년에는 어디를 갈까하는 고민 말이다. 저가 항공으로 동유럽으로, 에이비앤비로 30~50달러의 멋진 독채를 빌려 2주간 배낭여행을 계획해 볼까. 벌써부터 컴퓨터를 뒤적인다.

<김정섭 부국장·기획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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