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초라한 몰락

2017-11-2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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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무가베는 1924년 남부 로데지아 쿠타마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쿠타마 대학과 포트 하레 대학을 졸업한 후 학교 교사로 일했지만 흑인이 절대 다수인 나라가 영국 식민지로 소수 백인들의 통치를 받고 있다는데 분개해 정치판에 뛰어든다.

마르크스에 심취한 그는 흑인 독립 운동 지도자로 두각을 나타내며 1964년부터 1974년까지 내란 죄로 체포돼 수감 생활을 한다. 석방 된 후에는 이웃 모잠비크로 도주해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 동맹(ZANU)을 이끌며 이안 스미스의 백인 정부에 맞서 무장 투쟁을 벌인다. 영국 주재로 양측간의 평화 협상이 타결된 후 열린 1980년 선거에서 그가 이끄는 ZANU당이 승리하자 독립 짐바브웨의 첫 흑인 총리가 된다.

초기에는 의료 보험과 교육 서비스를 확대하고 마르크스적 구호에도 불구하고 시장 경제를 존중하는 정책을 편다. 백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를 땅없는 흑인들에게 분배하는데 앞장섰으나 처음에는 자발적인 매매를 통해 이루려 했다.


그러나 백인들의 저항으로 일이 지지부진하자 2000년대 들어 폭력을 동원해 강제로 뺏는 쪽으로 급선회한다. 백인 농장주들이 도주하면서 농토는 황무지로 변하고 식량 생산은 급속히 감소하며 아사자가 속출하면서 경제는 최악의 상태로 빠져든다. 무가베의 인기가 급락한 것은 이 때부터다. 그는 2002년, 2008년, 2013년 선거에서 이기기는 했으나 폭력이 난무하고 선거 부정이 광범위하게 저질러졌다.

37년간 짐바브웨를 통치하던 무가베가 21일 마침내 93세 나이로 권좌에서 물러났다. 그가 자신만의 장기 독재로도 부족해 자기보다 41세 어린 아내 그레이스에게 권력을 물려주려 하자 군부가 들고 일어나 쿠데타로 실각한 것이다.

무가베에게는 원래 샐리 하이프론이라 혁명 동지이자 첫번째 부인이 있었다. 1987년 샐리가 신장 이상으로 투석에 의존해 목숨을 연장하는 신세가 되자 어린 비서이자 유부녀였던 그레이스 마루푸와 바람을 피기 시작한다. 둘 사이에서 1988년 딸 보나가, 1990년에는 아들 로버트가 태어난다. 아내 샐리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참고 견딘 것으로 알려졌다.

1992년 샐리가 죽자 무가베는 그레이스와 결혼하며 그레이스는 단순한 아내가 아니라 국내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기 시작한다. 샤핑이 취미인 그녀는 ‘구치 그레이스’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부패 스캔들에도 연루돼 있다. 그녀의 자식들도 호화로운 사생활을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것이 낙이다. 아프리카 최빈국의 하나인 짐바브웨 국민들이 이를 어떻게 바라봤을 지는 불문가지다.

아프리카에는 아직도 대대손손 일가족이 권력을 장악해 국가를 개인 소유물로 여기는 나라가 수두룩하다. 아프리카 54개국 중 민주 국가는 14뿐이며 나머지는 독재 혹은 권력 세습 국가다. 이중 대표적인 것이 토고로 에야데마 부자가 50년째 권력을 쥐고 있다. 적도 기니는 음게마가 거의 40년째 독재를 하고 있고 그 아들이 이어받을 예정으로 있다. 31년째 무세베니가 집권하고 있는 우간다도 사정이 비슷하다.

하긴 멀리 갈 것도 없다. 한반도 북쪽에서는 김씨 왕조의 통치가 7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최근 넘어온 북한 군 병사 몸 상태가 말해주듯 주민들의 생활상은 아프리카보다 낫지 않고 정치적 탄압상은 이들을 월등히 능가한다.

한 때 흑인들의 인권과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던 투사가 권력에 눈이 멀어 독재자로 전락하고 그것도 모자라 아내에게 권좌를 넘겨주려다 쫓겨나는 모습은 너무나 초라하다. 무가베의 실각이 평양의 살찐 돼지에게 작은 교훈이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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