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들의 ‘애국심’이 궁금하다

2017-10-25 (수) 조윤성 논설위원
작게 크게
국가지도자의 정신건강은 한 나라의 안위와 직결되는 것은 물론 종종 역사의 물줄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까지 한다. 특히 큰 나라의 지도자일 경우 더욱 그렇다. 트럼프의 정신상태에 대해 많은 정신분석 전문가들과 언론이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최근 뉴욕에서 120여명의 심리학자들이 트럼프의 퇴진을 요구하는 가두행진을 벌인 것도 대통령의 정신상태에 대한 국민들의 경각심을 깨우쳐주기 위한 것이었다.

트럼프의 정신건강 문제로 가장 자주 지적되는 게 공감능력의 결여이다. 가장 유명한 트럼프 저서로 꼽히는 ‘거래의 기술’을 대필한 작가 토니 슈워츠는 지난 2015년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책 제목을 ‘소시오패스’라 지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슈워츠는 트럼프가 “깊이 있는 대답이 필요한 질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괴로운’ 인터뷰 대상이었다”며 그를 실제보다 매력적인 인물로 만든 걸 깊이 후회한다고 자책했다.

소시오패스, 그리고 사이코패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타인의 불편한 감정을 잘 헤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단어를 들으면 괴물 같은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지만 공감능력이 낮은 이런 사람들은 특유의 ‘냉정함’ 때문에 오히려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그래서 정치와 종교 분야에서 성공한 인물들 가운데 타인의 고통을 같이 느낄 줄 모르는 소시오패스와 사이코패스가 존재할 확률이 현저히 높다는 연구도 있다. 슈워츠의 눈에는 트럼프가 바로 이런 부류였다.


지난 주 전사군인 미망인을 위로한답시며 트럼프가 보인 언행은 왜 그가 공감능력 결핍자라는 지적과 비판을 받는지를 또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비통해하는 미망인에게 해서는 안 될 무신경한 발언을 던지고 심지어 전사군인의 이름조차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전화를 걸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군 통수권자의 위로전화로는 보기 힘들다.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결정적 캠페인 전략은 ‘애국팔이’였다. ‘미국 우선주의’와 ‘미국을 다시 한 번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으로 분노한 일부 백인들의 표심을 잡아 백악관에 입성했다. 그의 ‘애국팔이’는 대통령이 돼서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불합리한 현실에 항의하기 위한 일부 NFL선수들의 ‘무릎 꿇기’를 ‘국가에 대한 불경’으로 몰아가며 앞장서 이슈화 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전몰자 가족에게 보인 태도를 보면 과연 트럼프에게 ‘애국’ 운운하며 다른 사람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캠페인 기간 중 이슬람 미군 전사자를 모독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으며 전쟁 영웅인 존 매케인을 조롱하기까지 했다. 트럼프는 ‘애국’의 의무로부터 마치 자신만은 예외라는 듯 행동하고 있다.

오로지 자기만 알고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만 생각하는 미성숙한 인간들의 전형이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애국심이 들어설 공간이 별로 없다. 그래서 나르시시즘적 유형의 국가지도자들 대부분은 ‘애국팔이’에 능해도 정작 그 자신들은 별로 애국적이지 않다.

애국은 어떤 의례나 말이 아닌, 희생적 행위를 통해 드러난다. 국민들은 병역을 비롯한 국민 된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면 되고 권력을 위임받은 정치인들은 법에 저촉됨이 없이 구성원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이를 깨끗이 사용하면 된다. 특히 국가지도자라면 국민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 그리고 절제가 있어야 한다.

국가지도자에게는 ‘국민사랑’이 곧 ‘국가사랑’이다. 고통 받는 국민들에게 손을 내밀고 따스하게 껴안아 주는 것이 지도자의 애국이다. 이들을 차갑게 외면하고, 심지어 국가의 근간을 무너뜨린 과오는 인정하지 않은 채 사법체계까지 부정하는 어느 전직 지도자는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애국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애국은 말로만 떠들어대며 희롱하기에는 너무나도 소중한 가치다.

<조윤성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