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의 의견-가을걷이

2017-10-23 (월) 이항진 / 놀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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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초가집 옆에 물레방아가 있고 단풍나무가 울긋불긋한 영상과 함께 가을을 소재로 한 글을 보내왔다. 시골의 풍경은 언제나 아늑하고 정겹다. 하늘이 높고 뭉게구름이 흐르는 청명한 가을이 시작되니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진다. 추석으로 떠들썩하게 가족끼리 모여 송편을 먹고 차례를 지내는 한국의 모습을 TV로 보면 고향을 향한 향수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해가 가면서 점점 옅어지는 그리움이 나이 탓만은 아닐 것이다.

은퇴하면 무엇을 하면서 소일할까 생각하다 텃밭을 만들어 채소를 심기로 한지도 벌써 몇 년이 되었다. 단감, 비파, 무화과, 복숭아, 레몬, 바나나도 심고 호박, 고추, 토마토, 들깨, 부추, 상추, 근대 등 심을 수 있는 땅은 송곳 꽂을 자리도 남기지 않고 다 채웠다.

2월 초부터 퇴비와 흙을 섞어 씨를 넣은 큰 화분 6개를 비닐로 덮고 매일 물을 조절해주고 비가 오거나 밤에 날씨가 추우면 두꺼운 천으로 덮어준다.. 2개월 정도 지나면 제법 자라서 4월말이나 5월초 밭에 옮겨 심고 정성들여 키우면 매일매일 수확을 얻는다. 토마토는 아직도 따서 매일 주스로 만들어 먹고 있으며 고추도 익는 대로 따서 말리면 꽤 많이 김치 담그는 데 쓰고 남으면 친구들에게 나눠줄 예정이다.


애호박은 작년 1년 동안 560개. 누런 호박은 14개 수확했는데 금년에는 400개정도 밖에 얻지 못했다. 나무를 적게 심기도 했지만 해거리도 있는 것 같다. 매일 몇 개씩 따서 주위 친구들과 나눠먹는 것도 일하는 기쁨 중 하나다. 단감은 매일 손녀를 픽업하러 가면서 몇 개씩 따 차 안에서 먹을 수 있게 한다. 얼마나 흐뭇한 일인지 모른다.

금년 가을걷이를 끝내면서 생각해보니 고생도 했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서 하늘만 쳐다보는 늙은이가 아니고 매일매일 먹거리를 만드는 의욕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게 감사하게 느껴진다. 내 나름대로 유유자적하며 하루의 시간을 적절히 활용하며 여유 있게 살아가고 있다.

추수 끝내고 3개월 정도 쉰 다음 내년 농사를 계획하고 준비하면서 단감나무를 전지하고 느긋하게 세월의 흐름을 지켜보며 새해 봄을 기다려야겠다.

<이항진 / 놀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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