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최악의 산불

2017-10-1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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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악마의 바람’(Diablo wind)을 타고 순식간에 북가주 나파와 소노마의 와인 컨추리를 잿더미로 만든 산불은 가주 역사상 최악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화재 발생 열흘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완전히 불길이 잡히지 않고 있으며 이로 인한 사망자는 42명, 전소된 건물은 6,700채를 넘고 있다.

이재민만 10만 명이 넘고 재산 피해는 수십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망자 대부분이 70대 노인들이란 사실이 더 가슴을 아프게 한다. 갑자기 몰아닥친 화마에 거동이 불편한 이들은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하고 이승을 하직한 것이다.

도대체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올 산불로 피해를 보고 있는 곳은 가주만이 아니다. 올 들어 미국 전체에서 850만 에이커가 불탔는데 이는 지난 10년 평균보다 42%가 많은 것으로 뉴저지와 코네티컷을 합한 면적이다. 나파 산불로만 24만 에이커가 넘게 탔다.


미 서부 지역은 1970년 이래 산불 발생 기간도 78일이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산불 발생 기간과 지역이 증가한 것은 지구 온난화와 직접적인 영향이 있다며 이대로 가면 금세기 말에는 육지 면적의 60%가 산불 피해 지역에 포함될 것으로 보고 있다. 화재 발생 빈도와 기간이 늘어나면서 화재 진압 비용도 지난 30년간 연 10억 달러에서 20억 달러로 증가했다.

그럼에도 인구 증가로 산불 위험 지역에 까지 집을 짓고 사고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 미국에서만 지난 60년간 9,900만 명이 이런 곳에 조성된 주택지에 들어가 살고 있다. 이번 북가주 산불로 직격탄을 맞은 샌타 로자가 바로 그런 곳의 하나다. 산불 원인의 84%가 인간에 의한 것이고 보면 이런 지역에 사는 것은 짚섬을 안고 불속에 뛰어들어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다 지구 온도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 지난 10년 간은 인간이 온도를 재기 시작한 이래 가장 더웠다. 가주 역사상 발생한 최악의 산불 20개 중 13개가 2000년 이후 발생했다. 미 국립 해양대기국(NOAA)에 따르면 작년은 역사상 가장 더운 해였다. 날이 더울수록 산불 피해가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작년 겨울 쏟아부은 폭우도 대화재에 일조했다. 북가주 일부 지역에서는 90인치가 넘는 비가 내렸는데 이로 인해 5년 묵은 가뭄은 해갈됐지만 풀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설상가상으로 올 여름은 비 한방울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폭염이 계속돼 폴과 나무는 바싹 말랐다. 사상 최악의 산불이 터질 조건이 완벽히 갖춰졌던 셈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겨울에 비가 주로 오고 여름은 건조한 가주는 그러지 않아도 가을 산불에 취약한 곳이다. 거기다 지구 온난화로 기온은 계속 오르고 인구는 늘어 산불 위험 지역으로 주택 개발이 이뤄질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질 지는 불을 보듯 명확하다. 2013년 한 조사 결과 가주 주택의 25%가 이미 산불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와중에 트럼프 행정부는 지구 온난화는 허구라며 석탄 생산을 지원하고 탄소 배출을 억제하기 위한 오바마 정책을 뒤집고 있다. NOAA 발표에 따르면 올 9월이 역대 네번째로 더웠다 한다. 1, 2, 3위는 2015년과 2016년, 그리고 2014년이었다. 산불로 고생하는 가주민 수는 계속 늘어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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