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눈 뜨고 코 베이는 세상

2017-10-1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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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인 B씨는 뉴욕시 주거 연결(NYC Housing Connect)이라는 기관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렌트비 비싸기로 유명한 뉴욕에서 시정부가 서민들의 주거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지금 LA에서는 그 비슷한 임대료 보조 프로그램인 ‘섹션 8’ 신청이 시작되어 신청 열기가 보통 뜨거운 게 아니다.

B씨가 받은 이메일은 “패스워드가 5번 잘못 들어가서 귀하의 하우징 커넥트 계정이 잠정 중단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니 15분 후 다시 계정에 들어가라며 웹사이트를 안내했다. 이메일에 적힌 사이트를 클릭하면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가 “하 하” 웃으며 여유롭게 이메일을 무시해 버릴 수 있었던 것은 사는 곳이 뉴욕으로부터 수천마일 떨어진 남가주이기 때문이었다. 피싱 이메일이 분명했다. 하지만 자신의 구좌가 있는 은행 이름으로 이메일이 왔어도 그렇게 침착했을 지는 장담할 수 없다. 구좌가 해킹당한 게 아닌가 하고 바로 클릭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랬다면 개인정보가 몽땅 털려나가면서 엄청난 불편을 겪었을 수가 있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조금만 방심하면 제 손으로 제 발등을 찍는 세상이 되었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게 아니라, 두 눈 멀쩡하게 뜨고 있어도 코를 베어간다. 이메일, 웹사이트, 전화 피싱 사기 사건들이 다반사가 되었다. 누가 강탈을 하는 것도 아니고, 총 들고 위협하는 것도 아닌데, 안내하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하다 보면 사기를 당하는 것이다.

LA의 중년여성 P씨는 피싱 사기의 중간쯤까지 따라 가다가 용케 돌아선 케이스이다. 몇 주 전 랩탑으로 한국 드라마를 보는데 갑자기 화면이 멈추고 스크린이 하얗게 바뀌었다. 악성 바이러스가 침투했으니 빨리 전화를 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불법 사이트로 드라마를 보던 중이어서 별 의심 없이 전화를 했다.

마이크로소프트 테크놀로지 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상대방은 친절했다. 이렇게 해보라, 저렇게 해보라 안내를 하더니 “아무래도 팀 뷰로 들어가 내가 같이 살펴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모르는 사람이 컴퓨터로 들어오는 게 께름칙했지만 별 일이야 있을까 하고 허락을 했다.

상대방은 컴퓨터 안 여기저기를 둘러보고는 그동안 이렇게 많은 악성 바이러스가 침투했다며 리스트를 죽 나열해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바이러스들을 다 막으려면 소프트웨어를 설치해야 하는 데 동의하겠느냐고 물었다.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에 “생각해 보겠다. 오늘은 더 이상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싶지도 않다”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나니 ‘큰 일 날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이 팀뷰로 들어왔으니 혹시 몰라서 은행과 크레딧카드 회사들에 전화해 모든 계정을 잠정 폐쇄 시켰다. 그리고 컴퓨터 수리가게에 가서 랩탑의 모든 프로그램들을 지우고 새로 설치했다. 열흘 정도 데빗카드도 크레딧카드도 없이 생활하느라 불편했지만, 그만했으니 다행이다 여기고 있다.

피싱 피해자들을 어리버리 하다고 흉 볼일이 아니다. 수법이 교묘해져서 누구라도 당할 수 있다. 드라마 보다가 스크린이 얼어붙었다면 일단 컴퓨터를 끄고 볼 일이다. 아울러 명심할 것들이 있다. 뭔가 겁주는 메시지는 의심하고 볼 것. 이메일에 적힌 웹사이트는 절대 클릭하지 말 것. 모르는 번호의 전화는 받지 않을 것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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