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금과 세포

2017-10-14 (토) 김홍식 / 내과의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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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에 환자들이 송편과 과일을 가져다 줘서 고향생각으로 쓸쓸한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송편 안에는 깨, 검정콩, 녹두, 대추 등이 들어있었는데 하나씩 집으면서 어떤 것이 들었을까 기대하며 먹는 맛이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깨는 고소해서 좋고 콩은 구수해서 좋고, 대추는 씹을수록 달콤하다.

송편에 배어있는 어렴풋한 고향의 솔잎 향과 어머님의 손맛이 느껴진다. 음식과 사랑을 나누고 있을 친척들을 생각하면 추석은 더욱 나눔의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이웃들과 자기의 것을 나누는 것은 언제나 큰 기쁨이다.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이 감세안을 발표하였다. 법인세 대폭인하와 상속세 폐지, 과세 구간의 단순화가 골자인데 노동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며 부자들에게는 별로 혜택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부자들이 큰 이익을 챙기며 서민들은 부스러기 혜택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가진 자와 못가진자의 격차는 심화할 것이며 경제적 불평등에 의한 갈등은 더욱 증폭될 것 같다.


법인세 인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기업과 부자들의 세금을 줄여주면 경제 성장을 이끌게 되며 그 결과 세수가 더 늘어나서 모두가 잘살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기는 어려운데 그 이유는 골고루 분배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금의 세(稅)는 벼 화(禾)와 바꿀 태(兌)가 합쳐져 만들어졌다. 사람들이 수확한 곡식의 일부를 공동체에 바친 것이 세금의 기원이라 볼 수 있다. 인간의 속성상 자기 쓸 것을 남기고 국가에 즐겁게 바치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 세금의 역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반란이나 민란으로 얼룩져 있다.

프랑스 혁명도 루이 16세가 세금을 더 거두기 위해 삼부회를 소집한 것이 화근이었고, 영국은 1760년대에 접어들어 아메리카 식민지에 새로운 세금을 잇달아 부과하면서 이에 맞선 주민들의 의지가 독립전쟁으로 이어져 미국이 탄생하게 되었다. 동학혁명을 비롯한 조선시대 민란들도 대부분 가혹한 징세가 원인인 것을 보면 세금의 역사를 혁명의 역사라고 일컫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한 아이디어들도 기발하였다. 17세기 네덜란드는 건물의 너비에 비례해 과세를 했기에 당시 암스테르담 사람들은 절세용으로 건물을 좁고, 높고 길게 지었다. 제정 러시아의 군주는 한때 귀족들의 옷소매를 짧게 하고 긴 수염을 깎도록 했다.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려는 의지의 표시였지만 귀족들은 강하게 저항했다. 기발한 군주는 수염을 기를 수 있도록 허용하되 수염세를 물리기로 하였다. 수염세가 도입되자 러시아인들은 너도나도 수염을 깎았다.

사람 마음의 욕심과는 달리 우리 몸은 필요한 성분을 서로 분배하면서 살도록 설계되었다. 혈액은 콩팥을 통해 걸러지는데 그 과정에서 필요한 물질은 흡수되고 필요하지 않은 것은 배설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지방으로 되어 있는 세포막을 물과 여러 수용성 물질들이 통과해서 세포 안과 밖에서의 물질의 농도가 평형을 이루어야하는데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여러 특수한 문이 있어서 세포막 안팎으로 물질을 운반하는 방법이다. 물, 칼슘, 칼륨이 통과하는 문이 각각 다르고 독특하며 물질이 많은 곳에서 적은 쪽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마땅히 들어갈 문이 없는 당과 아미노산은 소금에 업혀서 세포막 안으로 들어가서 흡수된다. 적당한 문도 없고 필요한 물질의 평형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세포 에너지를 이용한 펌프로 필요한 물질을 끌고 들어가거나 배출시키는 적극적인 방법이 사용되기도 한다. 적극적인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몸 전체의 안녕을 위해 물질의 평형을 이루어낸다.

분배와 평형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도록 설계된 세포막에 유전적 결함으로 물질을 운반해주는 문이나 단백질에 문제가 있게 되면 필요한 성분의 평형이 이루어지지 않고 흡수와 배설이 안 되면서 몸에 질병이 생기게 된다.

분배와 평형을 이루어내는 세포들로 만들어진 건강한 우리 몸에서 세금의 정신이 분배와 공존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김홍식 / 내과의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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