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계’ 라는 말

2017-10-12 (목) 임지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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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라는 말

임지석 목사

1970년은 세계 역도선수권 대회를 앞두고 역도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한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들 사이에는 절대로 넘지 못하는 벽이 존재했는데 그 누구도 500파운드 즉 227kg의 무게를 넘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500파운드라는 무게를 가리켜서 인간이 들어 올릴 수 없는 무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당시 역도 선수들은 500파운드를 그들이 들어 올릴 수 없는 ‘한계’로 단정 지었던 것이다.

대회가 시작되자 우승 후보였던 바실리 알렉세예프가 결승에 올랐는데 그가 자신 있게 역기를 들어 올리는 순간 관중들의 입에서 아쉬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는 500이라는 숫자에 심리적으로 부담감을 느꼈던 나머지 500에서 하나가 모자라는 499파운드를 들어 올렸던 것이다.

그러나 잠시 후 장내 방송이 울려 퍼졌는데 주최 측의 실수로 역기의 무게가 잘못 측정되었으며 그가 들어 올린 역기는 499파운드가 아니라 501.5파운드로 기록을 정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일이 있은 후 놀라운 일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는데 인간의 한계로 여겨졌던 500파운드를 들어 올린 사람이 그 해에만 무려 여섯 명이나 나왔다는 사실이다.


‘한계’라는 단어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새삼 실감해볼 수 있는 것이다. 알렉세예프 이전에 500파운드를 들어 올린 사람이 없었던 이유는 이러한 무게가 인간의 한계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이 한계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서 사람들을 한계의 영역에 가두어놓고 더 이상 도전할 수 없도록 만든데 있었다. 이처럼 사람들이 정해놓은 한계란 그들의 생각 속에만 존재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것을 믿는 사람들에게만 존재할 뿐이다. 결국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유일한 한계는 우리 스스로 설정해놓은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땡벌’로 잘 알려진 땅벌은 자신의 덩치에 비해 작은 날개를 가지고 있음으로서 공기 역학적으로 볼 때 날아다니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땅벌은 이와 같은 신체적인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신기할 정도로 잘 날아다닌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땅벌은 자신의 한계를 날 수 없는 존재로 생각하는 대신에 당연히 날아다닐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땅벌은 이 땅의 많은 생물체들이 쉽게 단념할 수 있는 한계라는 단어를 초월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생각하기 쉬운 ‘한계’란 결국 인간의 이성과 상식을 통해서 이루어진 생각의 산물임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땅벌과 같이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진다면 얼마든지 이러한 한계를 초월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현재 처해있는 형편이나 상황이라는 ‘한계’를 떠나 그 이상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도 스포츠 세계를 보면 수많은 신기록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한계’를 초월하여 도전함으로서 얻을 수 있었던 산물이다. 앞에서 보았던 500이라는 매직 넘버에 연연하지 않고 끝까지 땀 흘린 결과 이루어낸 노력의 부산물이라는 말이다.

운동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이 현재의 기록에 만족하면서 도전을 늦춘다면 신기록이라는 것은 더 이상 기대할 수도 없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임지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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