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신건강 운운은 책임 회피다

2017-10-09 (월)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 ‘GPS’ 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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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발생한 최근의 총기난사 사건을 설명하면서 도널드 트럼프는 범인을 “미치광이 정신병자”로 지칭했다. 새로운 유사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일상적으로 나오는 표현이다. 그러나 그것은 비껴가기이자 사실왜곡이며, 필요한 대응에 대한 책임회피다.

라스베가스의 총격범이 미치광이라는 증거는 전혀 없다. (난 사후에라도 범인의 홍보를 해주고 싶지 않기에 그의 실명을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

그에겐 정신병 전력이 없다. 정신질환을 의심할만한 행동을 보인 적도 없다. 그는 사악한 인간이거나, 최소한 사악한 짓을 저지른 사람이다. 그러나 사악할 뿐 미치지는 않았다. 만약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려는 시도를 정신이상으로 정의한다면, 모든 살인자는 미치광이다. 그렇지 않다면 미치광이라는 표현은 문제를 이해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무의미한 용어에 불과하다.


실제로, 범인을 정신질환자로 몰아가는 신속한 추정은 논의 자체를 왜곡시킨다.

첫째, 이 같은 추정은 실제로 정신적 장애를 지닌 사람들에 대한 비방이다. 정신질환자라해서 선천적으로 강력한 폭력적 성향을 지니지는 않는다.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라기보다 피해자인 경우가 훨씬 많다. 폭력성을 보이는 일부 정신질환자들도 타인을 해치기보다 대부분 자해를 하는데 그친다. 정신건강 문제는 살인보다는 자살과 더욱 긴밀한 상호관계를 맺고 있다.

둘째, 곧바로 총격범의 “병”에 시선을 맞추고, 정신건강 치료 개선을 촉구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세인들의 관심을 총기라는 중심 이슈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시도다. (이런 수사를 사용하는 정치인들이 보통 정신건강 치료 기금 삭감에 앞장선다는 사실은 기막힐 정도로 시니컬하다.)

총기사고 사망에 관한 모든 대화는 미국이 그들만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지극히 분명한 팩트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미국의 총기사망률은 다른 선진국가들에 비해 무려 10배나 높다. 일본과 남한의 총기관련 연간 사망 건수가 제로에 가까운데 비해 미국에서는 해마다 3만 건의 총기사건이 발생한다.

이같은 불일치야말로 우리가 연구하고, 설명하고, 논의해야 할 핵심사항이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정신건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왜 책임회피인지 분명히 깨닫게 된다. 미국의 정신질환률은 영국의 40배에 턱없이 못 미친다. 그러나 총기사망률은 40배나 높다. 국민 1인당, 영국에 비해 15배나 더 많은 총기를 소유한 반면 총기 보유와 사용에 관한 제한규정은 훨씬 적다.

이 같은 명백한 상관관계는 다른 모든 가능한 이유를 내세워 책임을 회피하려는 우리를 정면으로 노려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나머지 선진국들에 비해 미국이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는 단순한 케이스가 아니다. 미국 전역의 총기폭력을 주의 깊게 살펴본 데이터도 상당히 유사한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알래스카, 와이오밍, 몬태나, 아칸소 등 총기보유율이 가장 높은 주에서 총기관련 사망률 역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뉴욕, 뉴저지, 코네티컷, 로데오 아일랜드 등 총기소유율이 가장 낮은 지역이 일반적으로 낮은 총기관련 사망률을 보였다.

거의 사화과학실험처럼 보이는 자료도 있다. 코네티컷은 1995년 총기구입을 어렵게 만드는 법을 통과시켰다. 그 뒤 10년간 총기를 이용한 살인사건은 이 법이 제정되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예상했던 수치보다 40%가 낮았다. 반면 미주리 주는 2007년 총기구입규제를 대폭 완화했고, 그 이후 5년 동안 총기관련 살인사건 발생률은 예상치를 25%나 웃돌았다.


이런 이슈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는 대단히 복잡한 문제다. 말 그대로 우리 스스로 연구 자체를 거부하기 때문에 더욱 다루기 어려운 문제가 되어버렸다.

공중건강에 관한 연구를 지원하는 주된 정부기관 중 한 곳인 질병예방통제센터(CDC)는 20년 동안 총기폭력과 공공정책에 관한 리서치를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됐다. 1996년에 제정된 이 법은 전미총기협회(NRA)의 주장을 받아들여 CDC가 총기규제를 옹호하거나 촉진하는 연구에 대해 기금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명문화한 조항을 담고 있다. 2017년에도 NRA에 불편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과학적 연구는 사실상 금지된 상태다.

연방 수정헌법 제2조와 미국의 총기문화 및 총기로비의 영향력으로 보아 간단한 대답은 없다. 그러나 작은 손질로 큰 차이를 만들어낼 부분은 적지 않다 ; 총기구입자 전원에 대한 보편적 신원조회; 군사용 무기 규제(자동발사장치인 범프 스톡 금지가 작은 첫 발자국이 될 것이다) ; 가정폭력이나 마약복용 전력자에 대한 총기판매 금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책임회피와 주의분산을 중지해야 한다. 총기폭력이라는 예방가능한 돌림병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미국이 무대책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씩 미국인 모두가 진짜 미친 게 아닌지 궁금해지곤 한다.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 ‘GPS’ 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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