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부혜택 오남용이 반이민 부추긴다

2017-10-06 (금) 김정섭 부국장 기획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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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맨’은 대공황의 절망 속에서 미국민들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줬던 ‘헝그리’ 복서 제임스 J 브래독(러셀 크로우)의 재기를 다룬 영화다.

계속되는 연패에 주먹 부상까지 겹쳐 선수 생활을 그만둔 브래독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일 노동자와 정부 보조 기관에서 빌린 돈으로 연명한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던 브래독에게 어느날 전 매니저가 찾아와 떠오르는 신예 복서와의 단 한판 경기를 제안한다.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둔 브래독은 내친김에 풀타임 복서로 나서 결국 악명 높은 챔피언(라이트 헤비급) 멕스 베어를 때려눕히며 재기한다는 내용이다.

영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가 첫 경기 승리 후 받은 돈으로 정부 기관을 찾아가 빚진 돈부터 갚으며 자존심을 세우는 장면이 유독 가슴에 와 닿아서다. 요즘 정부 혜택 오남용이 한계치를 넘어선 한인 노인 사회에 경종이 될 것 같아서 꺼낸 말이다.


상당수 한인들이 열심히 일하며 성실하게 세금을 낸 일반 미국인들도 받기 힘든 공짜 메디케이드(캘리포니아는 메디칼), 저렴한 저소득층(섹션 8) 아파트, 노인 아파트 등등 다양한 혜택을 권리처럼 누리고 산다. 그런데 그 내부는 부끄러운 불법 편법 행위들로 곪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90이 넘는 노모를 돌봐주는 가정 도우미(in home supporter 또는 provider)에 대한 불만 전화를 받았다.

정부 메디케이드(메디칼)에서 노모에게 120시간 도우미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노모의 도우미는 “다들 그렇게 한다”며 1주에 3번, 하루 5시간씩만 일을 하겠으니 정부 서류에 120시간 일 했다고 사인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안하면 오지 않겠다면서. 한달 60시간만 일을 하고 돈은 120시간어치 챙기겠다는 심산이다. 한인타운도 아니어서 도우미 구하기 어려워 고민이라고 한다. 물론 극소수 도우미의 일탈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라면 명백한 메디케이드 사기다. 메디케이드를 관할하는 연방정부 CMS에 따르면 알면서도 거짓으로 꾸며 정부 돈을 받으면 사기에 해당돼 5년이하의 징역형과 25만 달러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도우미 실태가 궁금해 좀 더 취재를 해 봤더니 적지 않은 노인들의 ‘횡포’ 또한 도를 넘는다.

도우미는 매일 노인 환자 집을 방문해 정부가 지정해 준 시간만큼 목욕, 청소, 장보기 등 필요한 일상생활을 도와주고 정부로부터 돈을 받는다. 근무 시간은 노인들이 서명을 해 줘야 인정 받는다. 그런데 일부 노인들이 근무 시간을 줄여 줄테니 나머지 시간 임금을 반씩 나누자고 한다는 것이다. 또 명절이면 “나 때문에 돈 버니 선물 달라”고 우기기도 하고 식당 하는 자식 돕는다며 콩나물 다듬고 감자 깎으라는 등 도우미를 하녀처럼 부리려는 노인도 있다고 한다.

가정 도우미는 연방정부 자금 지원으로 주정부가 극빈자에게 제공하는 메디케이드(캘리포니아는 메디칼) 서비스다. 일을 하고 세금을 제대로 낸 노인들이 받는 메디케어는 이런 가정 도우미 혜택을 주지 않는다.


저소득층에게 제공되는 ‘섹션 8’ 아파트나 노인아파트에도 ‘급행료’ 소문도 줄어들지 않는다. “다운타운 노인 아파트에 빨리 입주하려면 ‘미스 최’에게 5,000달러를 주면된다” “섹션 8 아파트에 빨리 입주하려면 아무개에게 3,000달러를 주면 된다” 등등 수 없이 많다. 정부 지원 아파트는 가격이 저렴해 대기자가 상당히 많다. 3~4년 기다리는 것은 보통이고 심지어는 8~9년까지도 대기한다. 순서 바꿔치기로 입주해 1년만 지나면 ‘급행료’로 지급한 돈은 쉽게 빠지니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 것이다.

이런 메디케이드(메디칼) 사기행위나 ‘급행료’는 한인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노인 의료분야에 밝은 한 간호사는 “타인종 커뮤니티에서는 우리보다 더 심각하다. 정부에서 메디칼 혜택을 점차 줄려가는 것도 이런 심각한 오남용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연방정부가 지난해 메디케이드 오남용으로 보는 손실액은 1,390억달러에 달했다. 모두 국민 세금 누수다.

이런 정부혜택 오남용은 결국 도널드 트럼프의 반 이민 정책에 부채질을 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오바마케어 폐지 추진도 막대한 메디케이드 오남용을 막자는데 있다. 한인 사회가 더 이상 반 이민 정서에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를 바래서 하는 말이다.

<김정섭 부국장 기획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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