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보세요 ~”

2017-09-30 (토) 김덕환 / 실리콘 밸리 부동산 중개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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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모인다. 라커룸에 들어서는 나를 보고 눈만 마주치면 어김없이 한국말로 정겹게 인사를 건네는 조는 독일병정처럼 기골이 장대한 60대 미국인이다. 아일랜드계로 실리콘밸리 터줏대감 기업의 하나인 시스코 시스템의 부사장이다. 젊은 시절 한국 지사로 자주 출장을 가서 그곳 직원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은 탓에 한국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할 줄 아는 한국말은 직원들이 전화걸 때 쓰던 말, ‘여보세요~’ 뿐이다.

요즘 체육관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북한의 로켓맨 김정은이다. “어제는 잠잠하던데?” 라고 말하는 조에게 나는 씨익 웃으며 “응, 내가 쏘지 말라고 했어… 가끔 내 말을 들을 때도 있지”라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은 박장대소를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요 며칠은 조용하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무시무시한 설전을 교환하고, 미국의 전략폭격기가 북한 영공의 가장 가까운 지점까지 날아가 무력시위를 하면서 한반도엔 전례 없는 위기사태가 조성되고 있지만 추가적인 미사일 도발소식은 아직 없다.


내가 김정은과 같은 성씨라 해도 그와 먼 친척이 될 가능성은 없는 걸 알면서도 짐에서 만나는 미국 친구들은 이것저것 물으며 말을 걸어온다. 이민온 직후부터 15년간 멤버로 매일 아침 출근하다시피하고, 저녁에도 사우나에서 휴식을 취할 때가 많은 나는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되어 체육관에서는 꽤 알려진 코리안인데, 요즈음은 북한의 물불을 가리지 않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때문에 이곳에서의 존재감이 본의 아니게 커졌다.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라고 친구들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어온다. 트럼프 대통령 ‘화염과 분노’ ‘완전한 파괴’와 같은 극단적인 말을 하면 할수록 체통만 떨어지니 당장 북폭을 행동으로 옮기든지, 아니면 그만두고 다른 방법을 찾든지 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가 제법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하면 그들은 귀를 쫑긋하며 경청한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1차 북핵 위기 때 클린턴 대통령이 진작 조치를 해 호미로 막았더라면 요즘처럼 가래로도 못 막아 허둥댈 필요는 없지 않았겠는가 싶지만, 역사에 가정이란 없는 법. 지금이라도 중국의 협조를 이끌어 내어 최선의 방법을 찾아가면 될 일이다.

23년 전 당시 중국은 저임의 노동력으로 선진국의 하청공장 역할을 막 시작해 달러를 벌어들이며 돈맛을 조금씩 알아갈 무렵이었다. 1997년 은행 재직 시 회의 참석차 출장 갔던 상해의 푸동 지구엔 허허벌판에 뾰족한 동방명주 첨탑하나만 외로이 서 있을 뿐이었다.

군사적으로도 미국에 별 위협도, 지금처럼 사사건건 소매를 걷어 붙이는 껄끄러운 나라가 못되었다. 미국이 북핵 문제를 풀어나가기가 훨씬 수월했을 텐데 돌이켜 보면 안이하게 시간만 벌어준 셈이 되었다. 중국은 지금 물경 3.7조 달러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는, 상전벽해의 G2 강국으로 대변신을 하였다. 보유외환 중 최소 2.5조 달러는 대미 무역흑자로 벌어들였으면서도, 미국에 대한 감사는커녕 오히려 남사군도 인공 산호초 비행장 건설 강행 등으로 주변국들을 자극해 미국의 영향력을 테스트하고 있고,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유엔결의를 위반한 북한에 대한 제재에는 형식적이고 소극적이다.

그런 중국이 한국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도를 넘어가는데 따른 불가피하고도 부분적인 방어체계일 뿐, 결코 자국을 겨냥하겠다는 의도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사드를 도입했다고 하여 “김치를 먹어서 멍청해졌다”는 둥 입에 담을 수 없는 망언과 함께, 폭격도 불사하겠다며 연일 어이없는 위협을 가하는 것도 모자라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에 대해 무지막지한 불매운동을 부추기고 있다. 이는 스스로 신뢰할 수 있는 국제 경제파트너로서의 지위를 포기한 것임은 물론, 불난 한반도에 부채질을 하는 것과 같은 극히 유감스럽고 양식없는 행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풍성한 한가위를 목전에 두고 감사의 마음이 무르익어야 할 이 좋은 계절에 한국은 지금 난데없는 북한 핵 미사일의 공포로 격랑에 휩싸여 있어 두고 온 가족과 친구들 걱정에 마음이 무겁다. 부디 이번 사태가 잘 해결되어 이참에 평화통일의 길로 가게 되었다는 희소식이 태평양 건너 바람타고 날아들기를 고대한다.

<김덕환 / 실리콘 밸리 부동산 중개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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