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족 이기주의, 가족 간 이기주의

2017-09-16 (토)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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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에 가슴 졸이고, DACA(불체 청소년 추방유예) 폐지에 긴장하며 8월을 보내고 9월을 맞았다. 물바다가 된 휴스턴 이재민들, 앞날이 불안한 드리머들에 온통 관심이 쏠렸던 지난 2주, 가슴 한편에 가시처럼 박힌 한국 뉴스가 있었다. 미주 한인노인이 서울에서 체포된 소식과 장애학생 부모들이 무릎 꿇고 애원한 소식이다.

휴스턴에 허리케인이 몰아치던 지난달 28일 서울 금천경찰서는 95세 노인을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했다. 보도된 내용을 보면 미국 시민권자인 노인은 미국에서 아들과 함께 살다가 지난해 12월 귀국했다. 필시 따로 거처가 없을 노인이 돌아오자 한국에 사는 딸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서로 ‘네가 모셔라’며 다툼이 잦아졌다.

사건이 발생한 날도 큰딸과 막내딸이 자신을 부양하는 문제를 놓고 싸우자, 보다 못한 노인은 욱 했던 것 같다. 막내딸의 뺨을 때리고, 이를 말리는 막내 사위에게 칼을 휘둘러 다치게 했다. 그 자리에 있던 가족 중 한사람이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경찰은 노인을 체포했다.


노인과 그 가족에 대해서 더 이상 알려진 것은 없다. 미국 아들 곁에 살던 그가 왜 한국으로 갔는지, 딸들에게는 노인을 모시기 어려운 어떤 사정이 있는지, 평소 딸들과의 사이는 어땠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나이로 볼 때 노인은 배우자와 사별했을 것이고, 자식들이 서로 부양을 미루는 것으로 볼 때 노인에게 재산은 없을 것으로 짐작된다.

부모가 늙고 돈 없으면 성인 자녀들에게 천덕꾸러기 되는 것이 워낙 흔한 세상이고 보면 이번 사건도 그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가 된다. 수명은 길어지는데 노후대책 없이 나이만 먹은 노인들에게는 남의 일 같지 않은 사건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DACA 폐지를 발표한 지난 5일 한국에서는 무릎 꿇은 학부모 동영상이 SNS를 달구었다. 한국시간 5일 강서구에서 열린 ‘특수학교 신설’ 주민토론회 장에서 벌어진 광경이다. 현재 서울시에서 특수교육이 필요한 장애학생은 1만2,800여명, 학교는 29곳,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4,450여명. 학교가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학생들은 먼 곳으로 다니느라 등하교에 보통 한두 시간씩 걸린다. 장애아동들에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서울시가 강서구 한 초등학교 부지에 특수학교를 신설하려 하자 장애아동 부모들은 기대가 컸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대가 너무도 거세다. “욕을 하시면 듣겠습니다. 지나가다가 때리셔도 맞겠습니다. 아이들 학교만 짓게 해 주십시오. … ” 호소해도 욕설만 돌아오자 부모들은 무릎을 꿇었다. “제발 도와 달라”는 호소에 주민들은 “쇼 하지 말라”고 야유했다.

주민들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어떤 우발적 행동을 할지 모르는 ‘위험한’ 아이들을 우리 아이들 가까이 두지 않겠다는 장애에 대한 편견, 그리고 장애인들이 모여들면 지역 이미지가 나빠져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이다.

내 가족 내 재산 지키겠다는 것이고, 다른 지역에 학교를 세우려 해도 그곳 반응 역시 같을 것이다. 가족이기주의가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요즘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남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는다.

장애아동 부모들이 죄인처럼 무릎을 꿇고, 95세 노인이 자식들에게 내쳐지는 두 사건은 서로 무관하지 않다. 전자가 가족 이기주의의 산물이라면 후자는 가족 간 이기주의이다.


과거에는 군식구 있는 집이 많았다. 고향 친척이 서울에 취직하거나 유학 오면 으레 함께 지냈다. 사촌이나 육촌 혹은 사돈의 팔촌이 복닥복닥 한방에 지내면서 불편함을 몰랐다. 함께 어울려 지내는 정이 있었고 공동체 의식이 있었다.

핵가족 구도가 굳어지고, 사회적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내 가족’ 중심주의가 강해졌다. 자녀들은 남 돌아보지 말고 무조건 이기도록 교육 받았다. 공부만 잘하면 효자였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지금 부모를 섭섭하게 하는 이기적 자녀들이다.

젊어서 자식 자랑을 화제로 삼던 친구들이 노년에는 자식에 대한 서운함을 털어놓으며 서로 위로를 받는다. 오죽하면 한국에서 불효자 방지법이 거론되고 있을까.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내 이익부터 챙겨야 살 수 있다는 강박증의 사회에서 가족 이기주의는 날로 강해지고, 그렇게 교육 받은 자녀들은 자라서 가족 간에도 이기적인 사람들이 되고 있다.

미주 한인사회도 비슷하다. 이민 와서 평생 땀 흘려 모은 재산을 자녀 사업 밑천으로, 자녀 주택 구입비로 내주고, 노년에 생활비 걱정하는 1세들이 적지 않다. 노후에 월페어, 메디칼 받으려면 은행구좌에 돈이 없어야 한다며 부모 돈을 끌어간 후 감감 무소식인 자녀들도 있다.

장애아 특수학교를 반대하는 이기주의가 먼 훗날 어떤 칼날이 되어 돌아올지 알 수 없다. 이기주의로 당당한 부모를 보며 자녀는 더한 이기주의자로 자랄 수도 있다.

우리 모두 관심과 포용의 울타리를 좀 넓혀야 하겠다. 멀리 보면 함께 사는 것이 잘 사는 길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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