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소설 <헤르만과 도로테아>에서 자녀교육에 관해 아버지와 어머니가 의견충돌을 일으켰다.
아버지는 아들 헤르만이 자신을 닮지 말고 훨씬 더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런 처방을 했다. 헤르만이 지금 살고 있는 작은 마을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 스트라스부르크나 프랑크푸르트 같은 도시로 여행을 보내 그곳에서 크고 정돈된 거리를 보고 온다면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사는 마을을 개선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런 경험이 없으면 다른 아이들처럼 노는 일이나 사치에 열을 내거나 집에 틀어 박혀 난로 옆에서 잡념에 빠질 것이다. 먹을 수 없는 버섯처럼 땅에서 나온 그대로 그 자리에서 썩어 살아 움직인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면 무엇에 도움이 되겠는가.
아버지의 생각은 17세기 로크의 환경론적 발달이론과 비슷하다. 인간은 원래 백지상태(tabula rasa)로 태어났지만, 좋은 환경과 경험을 조성해주면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아버지는 헤르만이 타고난 잠재성을 눈덩이로 여겼다. 높은 산에서 눈덩이를 굴러 내리면 그 과정에서 나무도 만나고, 바위도 만나고, 계곡도 만난다. 산아래 도착했을 때 처음 눈덩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환경의 영향으로 변한 것이다.
반면, 헤르만의 어머니는 자연방목을 주장했다. 남편이 자식을 잘못 교육시키고 있다고 일침을 가하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 방식은 아이를 스스로 망치게 만드는 결과만 가져올 거예요. 자식을 부모 뜻대로 만든다는 것은 말이 안되지요. 신이 주신 그대로 받아 자식을 사랑하고, 나머지는 자식의 자유에 맡겨야 해요. 이 자식은 이런 재능을, 다른 자식은 저런 재능을 타고 났으니, 자기 방식대로 살게 두는 겁니다.”
어머니의 시각은 인간의 성장이 환경에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부의 생물학적 스케줄에 따라 자연스레 성장한다고 주장한18세기 루소의 생각과 비슷하다.
헤르만의 아버지, 어머니가 각각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소설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버지, 어머니가 헤르만의 교육을 향해 그토록 다른 생각을 한 이유는 로크와 루소가 환경론, 방목론으로 각각 상반되는 교육이론을 낼 수 밖에 없었던 상황과 비슷했을 것이다. 금수저 환경에서 자란 로크는 자연스레 자신이 경험했던 좋은 사회적, 문화적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흙수저 환경에서 자라 어릴 때부터 떠돌이 생활을 했던 루소는 믿고 따를 것은 주변의 사회적 문화적 환경이 아니라 자연의 스케줄이라고 강조했다.
200여 년 전 소설에 등장한 헤르만의 부모가 만일 오늘의 사회를 방문한다면, 환경론ㆍ 방목론으로 의견이 나뉘지 않고 이렇게 한 목소리를 낼 것이다.
200년 전 우리가 살 때는 지식과 기술을 접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 한계를 넘기 위해 여행을 시켜야 했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그때는 사람의 뇌 스캔 기술도 없어서 자연이 선물로 준, 타고난 재능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오늘 세상에 와보니 인터넷과 컴퓨터가 누구나 지식과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보편적 교육(universal education)을 가능케 만들었다. 이런 세상에서는, 지난200년 동안 의견충돌을 불러온 환경론과 방목론이 아니라, 나이키론(Just do it), 즉 ‘무엇이든 지금 행동으로 옮기도록 하는 것’이 시대에 걸맞은 교육처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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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홍(교육전문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