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 서서
2017-07-21 (금) 12:00:00
이항진/놀웍
역마살이 있어서인지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이곳에 둥지를 튼 지 벌써 40년이 되었다. 힘들고 고달팠던 세월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웃으면서 과거 얘기를 할 수 있으니 망각하면서 사는 게 참으로 다행이다.
방값을 아끼려고 직장 창고에 우유박스를 놓고 그 위에 널빤지를 깔고 침대를 대신하면서 두 잡, 세 잡을 뛰며 열심히 시작한 초기 생활은 이민 1세대들 대부분이 겪은 일이니 나만의 일은 아닐 테지만 내게는 추운 계절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젊어서 미군 PX에서 일하면서 그들에게 얘기를 들어 꽤 많이 알고 있었지만 삶의 터전을 옮겨 뿌리를 내리는 일은 녹록치 않았다. 다행히 주위에 도우주려는 친구들이 있어 정착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시행착오와 실수도 많았지만 그러면서 배우고 변해가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25년을 눈코 뜰 새 없이 열심히 일하고 은퇴한 지 15년이 되니 이제는 내가 설 자리가 좁아졌다. 실버클럽 활동도 몇 년 하니 내가 물러설 때를 알게 되고 텃밭을 가꾸고 매달려 땀 흘린 지도 몇 해가 지나니 이제는 농사에 일가견이 생기고 농사삼매경에 빠지게 됐다.
나는 항상 나의 생활에 만족하고 과거에 혼자 와서 눈물겹도록 고생했던 시절을 잊지 않고 지금도 검소와 절약이 몸에 밴 생활을 하고 있다. 텃밭에서 나오는 야채들로 자급자족하면서 주위 사람들과 나눌 수 있으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오전 한나절 일하고 오후에 손녀 픽업해 주고 스포츠 센터에서 두 시간 동안 집사람과 운동하고 집에 오면 하루가 짧다. 친구들과 맥카페에서 아침을 먹으면서 생활얘기도 하고 가끔 집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며, 한 달에 한두 번 만나는 친구들과 차 마시고 노래방에도 가기 위해 LA 가는 길도 멀지 않다.
이제는 서서히 주변정리를 시작하려 한다. 저녁노을에 지는 해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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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진/놀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