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안전망 없는 사회

2017-06-24 (토)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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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부터 출근시간에 매일 얼굴을 보는 사람이 있다. 프리웨이에서 내려 일반도로로 접어드는 교차로에 한 노숙인이 서 있다. 처음 보았을 때 그의 인상은 좀 특이했다. 자그마한 체구의 노인인데 현실세계의 사람이라기보다는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인물 같았다. 백설 공주의 일곱 난쟁이 중 하나 같다고 할까.

그는 늘 팻말을 들고 조용히 서있다. 잔돈을 건네면 그는 긴 인사를 한다. “고맙습니다. 하느님의 축복을 빕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안전 운전 하세요.”의 네 문장을 항상 반복한다.


그렇게 거리의 일부처럼 서있던 그가 한 달 전쯤 보이지 않았다. ‘하루 쉬나 보다’ 하며 지나쳤는데 그런 날이 계속되자 신경이 쓰였다. 처음 그곳에 섰을 때로부터 한달, 두달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야위어 갔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눈은 생기를 잃고, 두 다리로 간신히 버티고 서있는 듯 아슬아슬해 보였다. 그의 부재를 매일 확인하면서 혹시라도 내가 그 교차로에서 한 사람의 생의 마지막 몇 달을 본 게 아닌 가 불안했다.

대도시마다 노숙자 문제가 심각하다. 도시 어디를 가나 노숙자가 보이고, 거리 곳곳에 노숙하는 텐트들이 보인다. 프리웨이 옆 외진 구역들은 텐트촌으로 바뀌고, 한적한 길모퉁이마다 샤핑카트 가득 살림들이 차려져있다. 우리 신문사가 있는 윌셔가 주변에서도 노숙자들이 인도 한 가운데서 잠을 자고 있어 행인들이 불편을 겪는다. 노숙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대도시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 머리 둘 곳 없는 사람들이 거리로 밀려나오고 있다.

노숙자가 얼마나 많아졌는지는 숫자로 확인이 된다. LA 카운티의 경우 노숙자 수는 지난 2013년 3만5,000명 정도이던 것이 해마다 늘어서 지난 1월 근 5만8,000명에 달했다. 1년 전에 비해 23% 늘어난 것인데, 사우스 LA와 이스트 LA 등 흑인과 히스패닉 지역에서는 50%가 뛰어올랐다. 한인타운이 포함된 10지구 내 노숙자 수는 1,500명 정도로 지난해보다 36% 늘었다. 한인 노숙자들도 적잖이 늘고 있어서 LA 타임스가 어느 한인 노숙자의 사연을 길게 보도하기도 했다.

노숙자가 되는 길은 간단하다. 아파트 렌트비 낼 돈 없으면 노숙자가 되는 것이다. 렌트비는 정신없이 치솟는 데 임금은 제자리라면 누구나 어느 불행한 순간 노숙자로 전락할 수가 있다. 부동산 중개업체인 질로.컴에 따르면 LA에서 현재 원베드룸 아파트 평균 렌트비는 1,930달러, 연소득이 5만7,000달러는 되어야 감당할 수 있는 액수이다. 감당해나가다가도 병이나 사고로 직장을 쉬거나 잠깐 곁길로 빠지는 등 예기치 못한 사건 하나 터지면 원베드룸의 안락은 사라진다.

직장 혹은 봉급 등 우리가 생명의 밧줄처럼 붙들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의외로 허약하다. 밧줄이 잘릴 수도 있고 스스로 놓지 않을 수 없는 상황도 닥친다. 그 아래 안전망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그대로 추락이다.

지난 8일 한국의 경남 양산에서는 고층아파트에서 작업하던 근로자가 추락사했다. 천 길 낭떠러지 같은 건물 외벽에서 밧줄에 의지해 도색작업을 하던 근로자는 공포심을 잊으려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았는데, 그 소리가 시끄럽다며 한 주민이 옥상에서 칼로 밧줄을 끊어버렸다. 밧줄 하나에 매달려있던 그는, 가장인 그에게 의지하던 가족의 삶은 산산조각이 났다. 떨어지는 그를 받쳐줄 안전망은 없었다. 우리 대부분의 삶도 궁극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밧줄 하나에 매달려 불안하게 살고 있다.

안전망 부실한 사회에서 노숙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LA 카운티와 LA 시는 주민발의안을 통해 노숙자 주거시설 확충, 정신건강 서비스, 약물 재활서비스, 직업훈련 등 노숙자 문제 해결을 위한 재원을 마련했다. 하지만 노숙자들이 너무 급속히 늘어서 감당이 어려운 실정이다.


2주 전 쯤 출근하는데 프리웨이 빠져나오는 길목이 몹시 밀렸다. 차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 이유를 곧 알게 되었다. 그가 그 모퉁이에 서 있었다. 매일 그곳을 거치는 운전자들의 마음이 비슷했던 모양이다. 오랜 만에 나타난 그에게 적어도 운전자 두 명 중 한명은 돈을 건넸다. 이후 그는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건드리면 당장이라도 바스러질 듯 그는 나날이 위태롭다.

구걸하는 노숙자에게 돈을 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람들이 고민을 한다. 그 돈으로 술이나 마약을 산다면 차라리 안 주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걱정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에 대한 정답을 내어놓았다. 지난 봄 이탈리아의 노숙자 관련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돈을 주라. 그 돈을 어디에 쓰든 염려하지 마라. 술 한잔이 그 사람의 삶에서 유일한 행복이라면 그에 쓴들 어떠하겠는가.”

단지 어려운 사람이 앞에 있으니 나누는 마음, 그것이 가장 기본적인 안전망일 것 같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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