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육칼럼

2017-06-22 (목) 12:5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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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알고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 대니얼 홍

“어느 순간에 찾아오는 유레카(eureka 찾았다!)는 없다. 있다면 그것은 떠다니는 가짜뉴스 아니면 대중문화가 만들어낸 거짓말이다. 그런 가짜, 거짓말로 인해 사람들은 주눅들고 기가 꺾여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는다. 만일 내가 전세계 사람들을 이어주는 완벽한 아이디어와 플랜을 가졌더라면 나는 페이스북을 시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처음부터 모두 알고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하다 보면 아이디어는 나중에 따라온다. 무엇이든 시작하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미쳤다, 말도 안된다, 해봐야 소용없다라는 비난 혹은 조언을 듣게 된다. 그리고, 남다른 성취는 실패할 수 있는 자유에서 온다.”
페이스북의 창시자 저커버그가 올해 하버드대학 졸업축사에서 강조한 내용이다.

남다른 성취를 이루는 사람은 미친 짓을 회피하지 않는다. 미친 짓이 결코 바보짓이 아닌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바보는 지금 당장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것들을 대학에 진학하면, 졸업하면, 취업하면, 결혼하면, 경험을 좀더 쌓으면, 돈을 벌면, 나이가 들면, 은퇴를 하면 등등으로 꾸준히 그리고 일관성 있게 뒤로 미룬다. 미루기 쳇바퀴에 익숙하다 못해 중독이 된 것이다.

반면, 성취자는 주변 사람들의 핀잔이나 조롱에 상관없이 바보 같은 아이디어를 주저없이 행동으로 옮긴다.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은 자신의 시작을 이렇게 회상했다. “내가 알리바바 사업을 시작했을 때 모든 사람들은 나를 향해 미쳤다고 말했다. 당시 내가 미친 것은 확실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바보 짓은 아니었다.”

카프카의 소설 <성>에 등장하는 K는 측량작업을 위해 성에 들어가려고 근처의 마을에 도착했다. 그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한결같이 무엇엔가 짓눌린 듯한 인상을 가졌고, 두들겨 맞는 고통 속에서 빚어진 얼굴을 지녔다. 권위와 관료의식으로 가득찬 성의 체제에서 마을 사람들은 무조건 복종하는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다. 만일, 민원이 생기면 관리의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했다. K가 방문했을 때 성관리자의 횡포는 마찬가지였다. K의 입성을 이렇다 할 이유없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입성하려고 여러모로 애썼지만 K는 이미 뿌리 박힌 권력과 추종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관리자가 보내는 메신저를 성밖에서 마냥 기다려야 했다.

카프카의 <성>에서 본 비슷한 일들이 학교에서도 나타난다. 마을 사람들처럼 학생들은 교사의 지도에 무조건 따르고, 학교의 졸업인증서를 받을 때가지 수동적으로 시간을 때운다. 왜 그럴까. 좀더 배우면 내가 어떤 커리어를 찾아나서야 하는지 아이디어가 떠오르겠지. 학년이 올라가면 전공과 진로가 좀 더 뚜렷해지겠지. 이렇겠지, 저렇겠지 꿈만 꾸며 무작정 기다리도록 만드는 곳이 학교다.

학생들은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무엇인가를 기다리지만 그 무엇이 나타날지 아닐지 아무 것도 모르는 채 마냥 기다린다. 졸업 후 사회의 좋은 부속품이 되기 위함일까. 아니면 남들이 손가락질하는 미친 짓을 저지르기 위함일까. 인터넷 등장 이전에는, 성밖에서 기다리는K처럼 학생들도 기다려야 했다. 인터넷시대에서의 기다림은 희망이 아니라 자포자기다. 굳게 닫힌 성문이 인터넷으로 인해 해체된지 이미 오래되었고, 중앙집권적 권위는P2P로 이미 산산조각 났다. 더 이상 무엇을 기다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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