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독의 힘

2017-06-03 (토) 유정민 /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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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는 언니가 얼마 전 독방체험이라는 걸 했다고 전해왔다. 행복공장이라는 단체에서 진행하는 성찰 프로젝트인데, 1.5평의 작은 방에 스스로 갇혀서 24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만 듣고 당장 “헉, 밖에서 열어주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 문 안에 갇혀있다고? 숨 막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다녀온 언니와 형부는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고 한다.

그 시간 동안은 휴대전화나 책도 금지되며 오직 잠을 자거나, 배식구로 넣어주는 밥을 먹고 쉬거나, 글쓰기, 명상, 맨손운동 등만 가능하여 오롯이 자기 자신과 보낼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아마도 마음속에 들어있던 생각과 기억들을 다시 꺼내어 다시 조립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우리는 요새 너무나 많은 통신장치들을 손에 들고 세상과 연결되려 애를 쓰고 있다. 어떤 날은 손에 스마트폰, 옆에 태블릿, 앞에 노트북을 열어놓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내 머리 속의 안테나도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 있을 뿐 아니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라도 놓치면 도태되는 게 아닐까 두려워 페이스북을 스크롤하고,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보고, 또 다른 앱이 나오면 써보고, 요샌 뭐가 유행인지 기웃거리기도 한다. 혼자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혼자이기를 거부하는 모순이다.

오래 전 어떤 세미나에서 들었던 말이 있다. “고독해야 강해진다(Strength comes from solitude).” 아, 그 말은 내 가슴과 머리에 박혀 지금도 가끔 정신없이 바쁘거나 에너지가 줄어들 때 생각이 나곤 한다. 물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는 가족, 친구, 동료, 이웃 등과 어울리며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인정받고 사랑받고 행복해한다. 하지만 혼자만의 고독을 즐기는 것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 같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들여다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실수를 줄일 수 있는 성찰의 기회도 되며, 다시 사람들을 만날 때 더 좋아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니 관계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유명한 성격테스트 중에 MBTI 테스트가 있다. 얼마나 성향이 외향(E)과 내향(I), 직관(N)과 감각(S), 사고(T)와 감정(F), 판단(J)과 인식(P) 중 치우쳐있는지 종합하여 나타난다. 나는 내향적이며, 직관적이고, 사고하면서 판단하는 성향이다.

오래전 해본 것이라 아마도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일단은 내향적임을 확인하고 안도했다. 그래서 내가 파티나 사람 많은 곳에 가면 뻘쭘 했으며, 구석자리를 잘 찾아다녔고, 먼저 인사하기를 꺼렸구나, 더구나 그룹행사를 끝내면 빨리 집으로 돌아가 혼자 있는 시간을 간절히 원했구나 싶었다. 마치 배터리가 방전 되듯 힘이 빠져나갔다가 집에 돌아와 아늑한 시간을 갖게 되면 쭈욱 충전이 되는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 이제는 나가지 않으면서도 전화기나 태블릿으로 영화며 드라마 뉴스 문자메시지 소셜네트워크 등등을 쉬지 않고 아무 때나 보게 되니 겉으로는 조용하나 마음속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가끔 인터넷 금식을 하기도 한다는데, 나는 독방체험 대신 인터넷, 미디어 금식을 해야 할까 보다.

아무것도 읽거나 보지않고 가만히 내 생각을 들여다보는 고독한 시간을 일부러 만들어야할 것 같다. 혼자이되 혼자가 아닌 사람들, 혼자 있는 데도 혼자 있기 무서운 사람들, 그게 바로 나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전화기를 먼저 들고 세상에 무슨 일이 또 일어났는지 열어보는 버릇, 책을 들고 의자에 앉아서도 책보다 전화기를 먼저 보게 되는 버릇, 글을 쓰려고 하면 당연히 종이나 펜이 아닌 노트북을 여는 버릇, 산책을 나갈 때에도 나무나 바람을 느끼기 전에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 음악소리를 먼저 들으려 챙기는 버릇. 하나하나 나열할수록 이렇게 많은 무형의 안테나를 내 속에서 세상에 거미줄처럼 뻗어놨으니 매일 머리와 마음이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싶다.

지난 토요일 아주 오랜만에 하이킹을 갔다. 숲속의 바람소리, 물 흐르는 소리, 새소리를 마음껏 느끼고 왔다. 세상소식을 모른 채 걷고 땀을 흘리면서 내 안에 에너지가 차오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독방에 갇히는 걸 두려워하는 나에게는 반나절의 미디어 금식이나 전화기 없는 자연과의 고독한 시간이 먼저 필요할 것 같다. 힘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유정민 /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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