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지막 지푸라기

2017-05-23 (화) 민경훈 논설위원
작게 크게
오늘의 미국을 만드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미국 대학은 어디일까. 많은 사가들은 프린스턴을 든다. 당시 뉴저지 칼리지로 불리던 이 대학은 현 연방 정부의 토대가 된 헌법을 만드는 제헌회의 대의원 55명 중 9명을 배출했다. 당시 명문이었던 하버드와 예일을 합친 것만큼의 숫자다. 이밖에 건국 초기 한 명의 미국 대통령과 부통령, 9명의 각료, 21명의 연방 상원의원과 39명의 연방 하원의원, 3명의 연방 대법원 판사와 12명의 주지사가 이 대학 출신이다.

그전까지 별 볼일 없는 학교였던 이곳을 명문으로 키운 것은 존 위더스푼이라는 인물이다. 스코틀랜드의 목사이자 교육가였던 그는 누구보다 많은 미 지도자들을 키워냈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프랑스와 함께 계몽철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었다. 둘 다 이성의 힘으로 세상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프랑스가 인간의 선한 본성을 믿는 낙관적 태도를 보였다면 스코틀랜드는 이에 몹시 회의적이었다.


스코틀랜드 계몽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인 데이빗 흄의 “…정부조직을 창설하고 헌법에 견제와 통제 장치를 마련할 때는 모든 인간은 악당이며 항상 개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가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집권자의 선의를 제외하고는 자유와 재산에 대한 아무 보호장치가 없게 된다. 이는 결국 아무 보호장치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는 말은 정부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스코틀랜드 철학의 입장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런 생각은 위더스푼을 통해 프린스턴 졸업생들에 큰 영향을 미쳤고 그의 제자이자 연방헌법 초안자인 제임스 매디슨을 통해 미 국가체계의 근간을 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헌법에 관한 가장 뛰어난 해설서’로 불리는 ‘연방주의자 논고’ 51번에서 매디슨은 “인간이 천사라면 정부는 필요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정부를 창설할 때는 먼저 국민을 통제하는 정부를 만들고 다음으로 그 정부를 통제해야 하는 큰 어려움이 따른다고 말했다. 그는 그 해법을 권력을 입법과 행정, 사법 3부로 나누고 다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로 분리한 후 “야망이 야망을 견제하도록 만드는” 데서 찾았다.

그러나 그렇게 하더라도 법을 집행해야 할 행정부의 수장이 법을 지키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물론 의회에는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돼 있지만 입법기관인 의회가 대통령의 비위 사실을 밝혀내는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마련된 것이 특별검사 제도다. 대통령 수하에 있는 법무장관의 지휘를 받는 일반검사와는 달리 특별검사는 독립적으로 사안을 수사하며 임기도 없다. 예산도 의회에 따로 요청해 받기 때문에 행정부 눈치 볼 일도 없다.

‘옥상옥’이라는 비판이 있기도 하지만 권력자의 직권남용을 견제하고 방지할 수 있는 강력한 장치이기 때문에 미국은 1875년 율리시즈 그랜트 이후 140년이 넘게 이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주 로드 로즌스타인 법무부 부장관이 트럼프 캠페인과 러시아 내통혐의를 조사하기 위한 특별검사로 로버트 뮬러 전 FBI 국장을 임명했다. 공화 민주 양당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는 뮬러는 이 사건을 수사하는데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사전에 이 사실을 통보받지 못한 트럼프는 펄펄 뛰고 있다는데 그도 그럴 것이 특별검사는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데다 임기도 무기한이고 자르는 것도 FBI 국장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닉슨은 워터게이트 때 특별검사 해임을 지시했다 본인이 물러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트럼프는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이 자기 주변으로 수사망을 좁혀오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를 전격 해임했을 것이다. 자기한테 대한 충성 맹세도 거부하고 마이클 플린 전 안보보좌관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라는 요청도 거부하는 인간을 자름으로써 아랫 것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건국이념과 헌법의 기본원리에 대한 무지에서 온 악수다. 미국은 트럼프 같은 인간이 트럼프 같은 짓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세워진 나라고 연 헌법은 그를 위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잡은 지푸라기가 트럼프라는 낙타의 등을 꺾는 마지막 지푸라기가 되어 가고 있다.

<민경훈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