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진화하는 전화

2017-05-22 (월) 윤여춘 / 시애틀 지사 고문
작게 크게
올해 네 살인 내 손자의 최고 장난감은 아이패드다. 제 나이 또래용의 게임들을 용케 찾아내 온종일 논다. 두달 전 LA 집에 갔을 때 까무러칠 뻔 했다. 손자 녀석이 아이패드에 대고 오늘이 그랜드마 생일이라며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자동응답기가 여자 목소리로 대꾸해줬다. 놀랍게도 나중에 아내 전화기에 “그랜드마 생일 축하해요”라는 문자 메시지가 떴다.

요즘 아이들은 엄마 뱃속에서 컴퓨터를 배워가지고 나오는듯 스마트폰과 아이패드에 능수능란하다. 컴맹세대인 할아버지, 할머니와 대화가 안 된다. 나는 손자 나이 때 전화라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다. 대학입학 후 이모 댁에서 친구에게 전화한 것이 첫 경험이었다. 결혼하고 아들 낳고 내집 마련을 한 뒤에야 집에 전화를 가설했다.


그리스어로 ‘먼(tele)’ ‘목소리(phone)’라는 뜻인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사실은 여러 명의 다른 발명품들을 보완해 1876년 최초로 특허를 받아낸 사람이다. 한국에는 6년 뒤 중국에서 전화기가 처음 도입됐고, 1896년 덕수궁에 자석식 전화기가 가설돼 고종이 즐겨 사용했었다. 하지만 일제강점 36년 간 한국 내 전화보급은 일체 중단됐다.

내가 한국일보에 입사한 1968년 만해도 집에 전화가 있는 직원은 극소수였다. 전화가 부귀와 신분의 상징이었던 때였다. 체신부 담당이었던 선배기자가 매일 퇴근 무렵 집에 전화를 걸어 어린 딸의 재롱떠는 소리를 듣는 모습이 부러웠다(당시 체신부 출입기자들에겐 전화가설의 우선권이 주어졌다). 일반 가정에는 1970년대 후반에야 전화가 본격 가설됐다.

선망의 대상이었던 그 가정 전화(유선전화)가 한국에서 40여년 만에 구박덩어리로 전락했다. 그보다 훨씬 편리하고 용도가 다양한 스마트폰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들고 다닌다. 인구보다 스마트폰 수가 더 많다는 말도 있다. 아직도 집에서 골동품 다이얼 전화기나 버튼 식 전화기를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다. 공중전화 박스가 거리에서 사라진 건 이미 오래 전이다.

하지만 미국은 다르다. 셀폰만 사용하는 가구(50.8%)가 유선전화 사용 가구(45.9%)를 작년 후반에야 처음으로 앞질렀다. 두 종류 전화를 모두 사용하는 가구가 39%였지만 두 가지 모두 없는 가구도 3.3%였다. 최근 발표된 이 통계는 연방 질병통제예방센터가 장기 국민건강 조사를 위해 비교적 번호가 덜 바뀌는 유선전화의 사용률을 추적한 데서 밝혀졌다.

유선전화를 고수하는 이유도 다양했다. 셀폰이 터지지 않는 오지에 산다거나, 전화 동선을 빼내려고 집 벽에 구멍을 뚫는 게 싫다거나, TV 인터넷 등과 패키지 돼 전화만 취소할 수 없단다.

특히 장애인들과 독거노인들이 유선전화를 선호한다. 911에 긴급히 전화할 때 셀폰은 아파트 동수까지만 추적해주지만 유선전화는 방 번호까지 파악해주기 때문이다.

질병통제예방센터가 전국적으로 거의 2만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이 설문조사에서 특이한 공통점이 하나 드러났다. 셀폰만 사용하는 성인들은 유선전화를 사용하는 성인들보다 (연령층, 소득규모와 상관없이) 술고래에다 애연가이며 건강보험에 들지 않는 경향이 높다고 했다. 그 이유를 밝혀내려면 별도의 심층조사가 필요하다고 예방센터 관계자가 말했다.

전화기처럼 몰라보게 진화한 인류의 문물도 드물다. 벨이 발명한 ‘먼 목소리’는 141년 후 만인의 필수품인 ‘영리한 목소리’(스마트폰)가 됐다. 얼마 전까지도 공상 과학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다. 전화기라기보다 만능 휴대용 컴퓨터다. 실시간 뉴스에다 음악, 영화, 게임도 즐길 수 있다. 녹음기와 카메라로도 쓰인다.

해마다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거나 개선된 스마트폰이 쏟아져 나오지만 나는 그 많은 기능을 10%도 활용 못한다. 솔직히 통화기능뿐이었던 예전의 유선전화가 그립다.

<윤여춘 / 시애틀 지사 고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