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와 러시아

2017-05-17 (수) 12:00:00 남선우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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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漸入佳境)이란 표현이 꼭 들어맞는다. 지난 주 트럼프 대통령이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을 전격 해임시킨데 뒤따른 백악관의 지속적인 거짓말, 아니면 말 바꾸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코미는 아들 부시 대통령 시절 법무차관이 되었다. 당시 법무장관 입원으로 장관대행 중 대통령이 도청관련 한시법의 기간을 연장하려 하자 코미는 이를 반대해서 원리원칙의 공직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백악관 법률수석이 중환자실로 가서 장관의 서명을 받으려 한다는 낌새를 챈 코미는 경찰차의 호송 아래 먼저 도착해 그것을 막았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야인으로 있던 그를 3년 반 전에 오바마 대통령이 FBI 국장으로 발탁한데는 그런 강직성이 한몫했을 법하다.


그런 코미가 지난해 7월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 시절 이메일 시설을 자택에 설치했던 사건의 수사를 종결하면서 힐러리를 기소하지 않겠다고 해서 트럼프의 분노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코미가 대선을 11일 앞두고 클린턴의 심복부하의 전 남편 컴퓨터에서 이메일들이 발견되어 조사를 재개했노라고 발표하여 이번에는 힐러리 지지자들을 대경실색하게 만드는 반면 용기 있는 결정이라고 트럼프의 격찬을 받기도 했었다.

그런데 러시아가 대선과정에 영향을 끼치려고 트럼프진영 인사들과 조율하려했다는 물증이 하나 둘씩 드러났기에 FBI가 조사에 착수했고 언제 종결될지는 예측할 수 없다는 코미의 하원정보위 3월 공개증언에 트럼프의 심기가 크게 상했을 것임은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이달 초 까지만도 코미에 대한 신임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 백악관의 앵무새 대변인의 주장이었다. 그래서 코미가 LA에 가서 FBI 직원들에게 연설하는 동안 연단 뒤 TV화면에 CNN의 코미 해임 속보가 자막으로 뜨고 이를 지적하자 코미는 부하직원들의 장난으로 간주하려 했었단다.

그런데 코미를 해임한다는 트럼프의 편지가 걸작이다. 약 2주 전 법무차관으로 임명된 로드 로젠스타인이 선거기간 코미 FBI 국장이 클린턴 이메일 사건을 잘못다루는 등 실수가 많아 FBI 직원들의 사기가 저하되었기에 해고해야 된다고 건의한 것을 받아들였다는 투다. 로젠스타인의 메모를 첨부한 트럼프의 해고 통지서에는 아주 묘한 표현이 들어있다.

“당신이 세 차례 나에게 나는 FBI 수사대상이 아니라고 알려준 것을 고맙게 여기지만 그럼에도 나는 당신이 FBI를 효과적으로 영도할 수 없다는 법무부의 판단에 동의합니다.”

처음 이틀 동안에는 펜스 부통령과 백악관의 대변인들 역시 같은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로젠스타인 차관은 자기가 해임 아이디어를 낸 것이 아니라면서 사직마저 불사하겠다고 나온다는 보도다. 그리고 11일 상원정보위에 출두한 앤드류 맥케이브 FBI 국장대리는 FBI 직원들 대다수가 코미를 신임하고 있으며 자신도 그와 같은 훌륭한 공직자와 일한 것을 영광과 특권으로 간주한다고 공언하여 백악관의 거짓말을 또 한 번 드러냈다.

거짓말의 압권은 역시 트럼프 자신이 마련한다. 지난 11일 NBC와의 단독회견에서 트럼프는 코미 해임은 자기가 상당기간 생각해왔던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코미가 한번은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두번은 전화로 트럼프는 조사대상이 아니라고 알려주었음을 강조한다. 얼마나 켕기는 데가 있길래 그러는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지난 10일에는 또 러시아 커넥션이 상·하 양원과 FBI의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 아래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장면이 전개되어 전문가들을 탄식시켰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상과 세르게이 키스리액 주미 러시아 대사가 트럼프와 희희낙락하는 장면이다. 정말 러시아 커넥션은 트럼프의 몰락 또는 탄핵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심각할까?

트럼프가 트럼프타워의 도청을 오바마 행정부에서 진행시켰다는 주장을 하자 코미가 트럼프를 “정상을 벗어난” 또는 “미친”으로 묘사했다고 코미와 가까운 사람들이 전했다는 보도이다. 이 보도가 참이라면 트럼프 행정부가 제대로 임기를 마칠 수 있는지, 참으로 예측을 불허하는 상태가 전개될 것이다.

<남선우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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