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보스 없는 기업이 성공한다고?

2017-05-22 (월)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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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라크라시-4차 산업혁명 시대, 스스로 진화하는 자율경영 시스템

브라이언 J. 로버트슨 지음, 흐름출판 펴냄

보스 없는 기업이 성공한다고?



직장 상사, 보스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거나, 직원의 창의성을 억누르거나,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하려 드는 권위적인 상사를 떠올린다. 그러나 반대로 관리자, 특히 CEO도 지나치게 집중되는 권한과 책임으로 고통받는다는 사실은 쉽게 인지하지 못한다. 직원은 자율성이 부족해서 불만이고 관리자는 집중된 책임 탓에 불만이라면 이들의 불만을 동시에 해결할만한 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터득한 자율경영체제를 바탕으로 2010년 ‘홀라크라시 헌장’을 발표하고 이를 전 세계에 설파하고 있는 브라이언 J. 로버트슨은 ‘홀라크라시’를 통해 ‘권한 집중’이라는 각 조직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나아가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 환경에 대응하는 데에도 ‘홀라크라시’가 최적의 경영시스템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체를 뜻하는 그리스어 ‘홀로스(holos)’와 통치를 뜻하는 ‘크라시(cracy)’를 합친 홀라크라시는 미국에선 대표적인 자율경영 시스템으로 통한다. 현재 전 세계 1,000여 개 영리·비영리 조직에서 활용하고 있고 대기업 중에선 1,500여 명의 임직원이 있는 미국 최대의 온라인 신발·의류 쇼핑몰 자포스(Zappos)가 2015년 홀라크라시를 도입했다. 자포스의 창업자 토니 셰이는 당시 도시처럼 자율적으로 진화하는 기업 경영 모델을 고민하다가 저자를 통해 홀라크라시를 채택하게 됐고 현재까지도 자포스에선 CEO나 관리자가 아닌 홀라크라시 헌장이 최고 권력체로 기능한다. 물론 헌장은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모든 구성원들의 집단지성을 활용해 수정되고 보완하며 진화한다. 홀라크라시의 세계에선 보스도, 경영진도, CEO도 없다. 저자 역시 자신의 회사인 홀라크라시원에서 30개 역할을 수행하는 일원이다. 자포스의 셰이는 홀라크라시 도입 후 “소수의 손에 권한과 책임이 집중되거나 사내 정치, 책임 회피 같은 전통 조직의 문제점들을 근본적으로 혁신할 수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홀라크라시를 채택한 조직은 마치 전략시뮬레이션(RTS) 게임이나 롤플레잉 게임(RPG) 속 세상처럼 운영된다. 스타크래프트에 건설로봇(SCV), 해병(마린), 의무관(메딕), 드론(일벌레) 등 각각의 유닛이 명시된 역할을 수행하듯 직원 개개인은 마케팅 전략, 소셜네트워크 마케팅 등 역할로 불리고 자율적으로 역할을 수행한다. 처음 헌장을 만들 때 각 역할에 목적(존재 이유)과 영역(독점적 권한), 책무(기대활동)를 명확하게 제시하는데 역할에 수정이 필요하거나 새로운 역할을 도입해야 할 때도 구성원들이 함께 결정한다. 마치 게임을 업그레이드하듯 말이다. 역할 중심의 조직에는 사람 간의 감정 싸움이 없다. ‘롤레이션십’을 통해 서로의 역할을 조정하고 각 역할은 명시된 권한과 책무에 따라 제 역할을 하는 것이 기본 콘셉트다.

홀라크라시의 세계에선 부서나 팀이 아닌 서클이 다원구조를 이룬다. 서클은 마케팅, 기획, 개발 등 분야별 현장 실무자들이 모인 조직이고 각 서클에는 전체 서클과 서브 서클의 비전과 역할을 맞추고 조정하는 링크들이 있어 시스템 변화에 민첩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도록 돕는다.

하지만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과 롤플레잉게임에서 유저가 매번 승리할 수 없듯 홀라크라시 역시 급진적인 경영시스템인 탓에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실제로 저자는 △권력을 놓지 않는 리더 △비협조적인 중간 관리자 △지시와 승인을 기다리는 조직원이 있는 조직에선 홀라크라시가 제대로 정착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이 세 가지 유형이 국내에선 기업은 물론 비영리조직에도 만연하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상명하복 문화가 짙고, 관리의 삼성, 불도저 현대 같은 대기업들의 성장 스토리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국내 환경에서 헌장 중심의 자율경영체계인 홀라크라시는 도입이 쉽진 않아 보인다.

물론 홀라크라시를 채택하지 않더라도 이 책에는 일반 기업은 물론 정부 조직에서도 채택할만한 유효한 조언이 있다. 우선 언어와 문화를 바꾸라는 것. 회의에서 ‘지적’ 대신 대안이 있는 ‘제안’을 하도록 하고 ‘동의’하느냐고 묻는 대신 ‘반론’을 대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암시적인 기대를 명시적인 역할과 책무로 규정하는 ‘역할기술서’를 쓰라는 조언도 참고할만하다. 역할 중심으로 운영되는 조직은 언제든 역할 간 충돌을 조정하고 비어있는 역할이 있다면 언제든 회의에서 제안해 채울 수 있다. 자율경영체계에선 ‘누구 때문’이라는 말 자체가 사라지며 구성원 모두가 진화의 동력이 되는 것이다. 무임승차자도 줄일 수 있다. 저자는 “당신을 둘러싼 조직 프로세스가 계속해서 당신이 숨은 곳을 비추기 때문에 숨어지내기는 매우 어렵다”고 지적한다.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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