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
2017-04-25 (화) 09:38:36

박다애,‘무제’
너에게서 멀어지려고
뒤란 감나무에서 덤으로 태양을 얻었고
부엌 앞에 놓은 우물은 몇 번의 펌프질에 울컥 그리움을 토했다
방에 붙어있는 부적은 누군가의 따뜻한 배경이었다
도배를 하고 바람소리 몇 구절을 들여 놓았다
봄에는 밭을 얼갈이하고 호박 고추 상추를 심고
닭과 오리도 몇 마리 풀었다
문득 귀에 익은 발자국 소리가 찾아오면
푸성귀 뜯어 한 상 내줄 요량이었다
너에게서 멀어지려고
이진욱(시 산맥 등단) ‘면역’ 전문
누군가를 잊기 위해 사소한 일상에 몰입하는 화자의 모습이 아프다. 뒤란의 감나무에 내리는 빛, 그리고 노동, 집 안을 쓸고 닦으며 호박 고추를 심는 그의 손은 그리움을 얼마나 멀리 보낼 수 있을까? 그의 마음이 찾아올 또 다른 이를 위하여 푸성귀 한 상 내줄 만큼 넉넉해졌다면 그리운 사람, 행여 잊히지 않는다 하여도 아름답겠다. 눈부시게 깨어나는 태양의 계절, 그 속 깊은 곳에는 이렇게 아픈 사연이 있다. 잊을 수 없는 누군가를 잊기 위해 피어나는 분주한 봄이다. 임혜신<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