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 어려움
2017-04-18 (화) 09:38:00
김희원 / 버클리문학회원
은퇴한 분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큰 집을 줄여서 작은 집으로 이사했는데, 청소도 쉽고 동선도 짧아져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한다. 이사하면서 어지간한 물건들은 전부 버렸다며 살림이 단출해지니 속이 다 후련하다고 한다. 아직 이사는 못 가도 이참에 필요 없는 물건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엔터테인먼트 장을 여니 비디오테이프가 가득이다. 이민 초기 아이들이 영어발음을 익힐 수 있도록 디즈니 비디오테이프들을 거의 다 사들였다. 이제는 VCR 시대도 아니고 아까워도 버려야 할 쓰레기가 되었다.
두 번째 아이템은 게임기와 게임 CD이다. 온갖 게임기는 다 있고 종류대로 게임 CD 또한 가득하다. 공부보다는 게임을 좋아했던 아들은 학교에서 C만 받아도 평균이라며 좀 더 분발하라는 나에게 제 나름의 논리를 펴곤 했었다. 뒤늦게 철이 들어 남들보다 힘들게 원하는 길을 찾았지만, 그래도 그 원동력이 되어 준 것이 그토록 열심히 해댄 게임인 것을 생각하면 이 세상에서 범죄 아닌 모든 경험은 다 자산이 되는 것 같다.
다음으로 버릴 것은 옷이다. 이제는 구식이어서 안 입는 옷들 중에서 추려놓은 옷이 한 보따리, 가격표도 안 뗀 옷은 아까워서 못 버리고, 몸무게가 늘었을 때 입었던 옷들은 혹시 다시 살이 찌면 입을 생각에 버리려다 다시 걸어두고, 남편의 젊은 시절 양복들은 지금도 멀쩡해서 버릴 수가 없고, 갖은 핑계를 대며 버리기를 주저했다.
그러는 사이, 기부 물품을 수거해가는 트럭을 또 놓쳐버렸다. 일 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은 버리는 것이 정리의 원칙이라고 한다. 내게는 필요 없지만 다른 이에게는 유용하게 쓰일 수 있도록 옷 정리를 마무리하여 다음번 트럭 방문 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기부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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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 / 버클리문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