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00달러와 빵 봉지

2017-04-17 (월) 09:28:45 윤혜영 / 병원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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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하고 있는 병원 사무실에 한 허술한 차림의 부인이 찾아와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도움을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진즉에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하며 빵 봉지를 내밀었다.

2년 전쯤 커뮤니티 브릿지 펀드의 혜택으로 탈장수술을 한 분의 부인이었다. 이 펀드는 수술 날짜를 받아놓고도 그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는 딱한 사정의 환자들이 수술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한인 밀집 지역의 병원이다 보니 꽤 많은 어려운 사정의 환자에게서 도움요청 전화를 받게 된다. 빨리 수술을 해야만 살 수 있는 데 보험도 없고 가진 돈도 없고 그 어떤 혜택도 수혜자격이 안 되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면 이때 두드릴 수 있는 문이 커뮤니티 브릿지 펀드이다.


그동안 인근지역의 교회와 개인 또는 작은 단체들에게서 성금을 받아 네 명의 환자가 수술을 하게끔 도와줄 수 있었다. 부인의 남편도 그 펀드로 수술을 받았었다. 걷기조차 힘든 극심한 탈장으로 직장 출근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펀드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고 일상생활로 돌아가셨던 분. 세월이 흘러 기억조차 사라지려는데 부인이 빵 봉지를 들고 찾아왔다.

그러더니 부인은 “여기 우리같이 어려운 처지에 놓인 분들을 위해 쓰시라고 가져왔어요” 라며 봉투 하나를 내 놓았다.

“적지만 열심히 모았어요. 받아주시고 꼭 필요한 사람을 위해 써주세요” 하고는 부인은 도망가듯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봉투 안에는 은행에서 바꿔온 듯 깨끗한 새 돈 2,000달러와 함께 짧은 편지가 들어있었다. “우리보다 더 힘든 사람이 수술할 돈이 없어 애태울 때 적지만 도움이 된다면 더 이상 감사할 수 없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묵직하게 느껴지는 봉투를 어쩌지 못하면서 새삼 부인이 입고 온 낡은 외투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태양은 떠오르는 것일까….

<윤혜영 / 병원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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