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케어의 몰락

2017-03-28 (화) 민경훈 논설위원
작게 크게
지난 7년간 공화당의 숙원 사업 하나를 들라면 그건 두 말할 것도 없이 오바마케어의 폐지다. 오바마가 집권하는 동안 오바마케어 폐지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제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연방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그 동안 60번이 넘게 이 안을 통과시켰다. 대단한 고집과 결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원만이 아니다. 작년 대통령 선거 유세 기간 중 도널드 트럼프는 취임 첫날 오바마케어를 폐지하고 보다 싸고 보다 좋으며 모든 미국인들을 커버하는 건강 보험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스스로 협상의 명수임을 내세우며 “오직 나만이 이를 이룰 수 있다”고 호언했다.

그러나 도널드 취임 두 달이 지난 지금 폐기된 것은 오바마케어가 아니라 트럼프케어로 불리는 오바마케어 폐기안이다. 지난 23일 연방 하원에서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던 이 안은 하루 연기되더니 그래도 부결이 확실시 되자 아예 법안 상정 자체를 포기했다.


이 안은 오바마케어의 핵심인 전국민 의료 보험 강제 가입 조항과 고소득층과 의료 기기 제조회사에 대한 특별세 부과 등을 폐지하는 대신 중하류층을 위한 메디케이드 확대를 줄이고 무보험자에 대한 정부 보조를 소득이 아니라 연령에 의한 차등 지급제로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초당적 기구인 의회 조사국(CBO) 보고서에 따르면 이 안이 시행될 경우 향후 10년간 2,400만명이 건강 보험을 잃게되는 반면 3,300억 달러의 재정 적자를 줄일 수 있다. 강제 가입 조항을 없애고 메디케이드 확대를 폐지한데 따른 당연한 결과다. 이 안이 모든 미국인에게 보다 좋고 값싼 건강 보험을 약속했던 트럼프 공약과 큰 차이가 있음은 물론이다.

도널드도 이 사실을 안듯 한번도 이 안이 자기가 약속한 의료개혁안이라며 미국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한 적이 없다. 오히려 이 안이 트럼프케어로 불리는 것조차 사양하며 폴 라이언 연방 하원의장 이름을 따 ‘라이언케어’로 불러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정작 트럼프조차 거리를 두려는 안에 미국민들이 지지를 보낼리 없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새 개혁안을 지지하는 미국인은 17%에 불과하다. 이 안이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하원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은 공화당이 오바마케어의 일방적 폐지를 원하는 강경파와 폐지와 동시에 대체안 마련을 원하는 온건파로 나눠져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 지도부는 양쪽을 만족시킬 수 있는 타협안 마련에 실패했다.

트럼프는 오바마케어 폐기를 사실상 포기하고 세제 개혁으로 넘어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제 개혁도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의료 개혁은 의료 분야 하나면 다루면 되지만 세제 개혁은 경제 전반에 걸쳐 영향이 미치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다. 이익 집단의 로비가 의료 개혁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거기다 의료 개혁을 통해 얻으려 했던 3,300억 달러의 예산 절감 효과가 사라져 대대적인 감세가 힘들어졌다. 이 돈 없이 세율을 낮추려면 국경 통과세 등 새로운 세금 마련이나 주 소득세와 부동산 세의 연방 소득 공제 같은 인기 있는 제도를 폐기해야 하는데 반대가 장난 아닐 것이다.

향후 10년 간 1조 달러의 인프라 투자로 미국 경제를 살리겠다는 도널드의 계획도 위기에 봉착했다. 재원 마련 없이 이런 대대적 지출을 감행하는 것을 공화당 보수파들이 허용할 리 없다. 이번 오바마케어 폐기안 때 보여줬듯 30명 남짓한 이들 보수파 협조 없이 공화당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공화당의 하원 다수 의석 수는 과반수에서 20여 명을 간신히 넘어 서기 때문이다.

오바마케어 폐기 실패에 이어 감세안 마저 주저앉는다면 도널드 행정부는 사실상 수명을 다한 것으로 봐도 된다. 정권은 항상 초창기에 가장 힘이 있는 법이다. 그 때 주요 공약이라 할 수 있는 오바마케어 폐기와 감세에 모두 실패한다면 더 이상 기대할 것은 없다.

취임 첫 날 오바마케어를 폐지하고 더 좋은 것을 내놓겠다던 도널드는 취임 한 달이 지나 “의료 제도가 이렇게 복잡한 것인지 아무도 몰랐다”는 헛소리를 했다. 그걸 모른 건 도널드 뿐이다. 이런 인간을 대통령으로 뽑아놓고 일이 잘 될 것으로 기대한 미국인들이 딱하다.

<민경훈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