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 오는 날의 알래스카

2016-12-27 (화) 08:07:44 정애경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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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고 베링해협 위에서 알래스카를 바라본다
비를 맞으며 녹아내리는 얼음 덩어리들이 멀어져간다
높고 푸른 하늘 밑 눈 덮인 산맥
야윈 듯이 젖어만 간다

미국의 자존심 마지막 땅덩어리
보물섬보다 더 많은 꿈들이 눈 속에 묻혔는데
빗물이 내려와 할퀴고 간다
산 보다 물이 높아 보인다

이글루를 지을 수 없어 에스키모가 살지 않는
눈썰매 대신 자동차가 있고
시퍼런 물살 속으로는
파도 소리마저 빠져들어 간다

안개로 가려진 바다 저 편
무너져 내리는 산들의 신음이 굉음으로 퍼지고
기회를 포착하려는 사진사의 환호성 소리
나를 슬프게 한다
희비가 엇갈리는 대자연의 무게를 안고
알래스카는 사라져 가나

커다란 털모자의 구릿빛 원주민은 이미 사라져버린 땅
알록달록 차려 입은 관광객
알래스카의 부두는 주인 잃은 항구
뿜어내는 고동소리는 사람들을 삼키고
방주처럼 문을 닫는다
매연이 구름 속으로 스며들고
물꼬리를 그리며 멀어져 간다

알래스카를 다녀오는 길에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눈썰매에
그리운 마음을 실었다
알래스카여, 영원하라!

<정애경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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