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역사교육용 ‘반면교사 3종 세트’

2016-12-07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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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말 공개된 한국의 역사 국정교과서는 완전 ‘함량 미달’이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면서,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독재의 성과는 부풀리고 과오는 줄이는 데 안간힘을 쓴 ‘박근혜표 효도 교과서’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전체 293페이지 중 박정희 서술에 무려 9페이지나 할당하고 있어 ‘박정희 위인전’이라는 조롱까지 나오고 있다.

왜곡된 관점과 방향도 문제지만 사실관계에서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오류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런 수준의 교과서로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혼’을 심어주겠다니, 그런 발상 자체가 비정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교과서는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특정인에 대한 예찬용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정 그렇게 아버지에 대한 헌사에 목마르다면 나랏돈이 아니라 자비로 출간해 뿌리면 될 일이다. 가장 기본적인 공사구분조차 못하는 박근혜의 고질병은 역사 국정교과서에서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역사가 현재를 비춰보는 거울이 되기 때문이다. 역사를 들여다보며 되풀이해서는 안 될 과거를 배우고 현재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를 ‘반면교사’라 부르는 것이다.

역사는 이런 교훈들이 넘쳐 나는 보고다. 사관들이 목숨을 걸고 위정자들의 실패와 치욕을 가감 없이 기술하려 했던 까닭은 자신들의 기록이 후세에 반면교사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이 역사기록의 ABC이고 역사교과서 또한 이런 원칙 위에 써져야 한다.

소중하지 않은 역사는 없다. 하지만 머나먼 역사보다는 가까운 역사가 던져주는 교훈이 좀 더 실감나고 생생하다는 걸 부인하기는 힘들다. 현재와의 유사성, 그리고 기억의 작용 때문이다. 고대사를 통해 깨우친 뿌리의식과 민족정신의 토대 위에 우리는 근현대사를 통한 얻은 교훈들을 벽돌 삼아 나라를 바르게 세워가야 한다.

“이게 나라인가”라는 탄식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은 가까운 역사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초래된 결과이다. 지난 수십 년간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정치적 혼란은 지난 역사와 지난 정권을 비판하고 비난할 줄만 알았지 정작 그들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는 일은 등한시한 데서 비롯되고 있다.

민족의 장래인 학생들을 위한 올바른 역사교육을 원한다면 친일과 독재, 그리고 미증유의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있는 그대로 가르쳐야 한다. 비록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역사일지라도 그것을 회피하거나 덮어두지 않고 직시할 때 또 다른 실패를 피하기 위한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친일’ ‘독재’ ‘헌정유린’은 역사교과서에서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될 근현대사의 ‘반면교사 3종 세트’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헌정유린 사태와 한국사회 가치 혼란의 뿌리는 친일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것과 맞닿아 있다. 친일청산에 실패하면서 한국은 기회주의가 판치는 나라가 됐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는 이런 기회주의 세력의 권력 장악과 기득권 유지를 합법화시켜주는 도구로 이용돼 왔다.

프랑스처럼 역사와 국민 앞에 저지른 범죄를 가차 없이 처벌하지는 못했지만 지금부터라도 올바른 역사를 세워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첫걸음은 제대로 된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일이다. 민족과 국민을 배신하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확실하게 가르쳐야 한다.

박근혜 정권의 명운은 곧 끝날 것이다. 시간적 거리를 두고 평가하겠다는 소극적 자세는 안 된다. 객관적 사실들이 드러나고 이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면 있는 그대로 교과서에 기술해야 한다.

박근혜표 효도 교과서는 태어나자마자 폐기될 처지에 놓여있다. 박근혜가 역사교육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여는 교과서에 손대는 것이 아니라 헌정을 유린한 최악의 대통령으로 여기에 이름 석 자를 올리는 것뿐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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